코로나 엔드게임

입력
2021.06.07 00:00
27면


많은 사람이 이미 백신을 맞았고 접종을 마친 사람은 마스크를 착용할 의무가 없는 미국은 빠르게 정상 생활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내가 사는 데인카운티는 18세 이상 성인의 72%, 65세 이상의 96%가 2차 접종까지 마쳤다니, 코로나 감염 경험이 있는 사람을 포함하면 성인 대다수가 면역이 되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여름의 시작인 메모리얼데이 주말에 여행을 떠난 이웃도 많고 친구들과 바비큐 파티를 하는 집도 많다. 나도 오랜만에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가기도 하고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여러 사람과 민낯으로 모임을 하는 어색함과 불안함도 잠깐이고 헤어질 때는 벌써 악수와 포옹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끝날 것 같지 않던 팬데믹 생활이 이렇게 끝나고 정상으로 돌아가나 싶다.

물론 이게 성급한 낙관적 전망이라는 걸 알고 있다. 오랜만에 쇼핑가와 식당가에 마스크 없이 몰린 인파를 보니 반가운 마음보다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NBA 경기의 꽉 찬 관중석에 마스크 없이 앉아 환호하는 사람들은 모두 백신을 맞았을까 염려도 된다. 미국은 언제 어디서나 원하기만 하면 예약도 없이 원하는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새로운 접종자 수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아직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 중에는 백신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진도는 더 더뎌질 것이다. 그중에는 타당한 이유와 걱정으로 백신을 맞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믿고 퍼뜨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마스크 착용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도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미국의 팬데믹은 시작부터 이념과 정치성향에 따른 갈등을 증폭시켰는데 끝나가는 과정도 예외가 아니다. 풍족한 백신 공급으로 어떻게든 정상 비슷한 상황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 갈등의 후유증은 오래 남을 것이다.

사회과학자들의 연구는 '어떻게' 위기를 맞고 극복하는지가 사회에 장기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19세기 초 독립한 노르웨이의 새 헌법이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 이후 가장 먼저 생긴 지역사회 조직이 화재에 대비하는 마을 단위 상호화재보험과 신용금고였다. 그런데 이 조직들을 가장 먼저 결성한 마을들이 20세기 초 소비자 협동조합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역시 가장 먼저 성공적인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공동체의 문제를 효과적 집합행동을 통해 해결하는 과정에서 집단적 문제해결의 지식과 기술 그리고 규범을 학습해, 이후 다른 문제에 대처하는 시민역량을 키울 수 있었다는 교훈이다.

코로나 위기도 정부의 효과적 리더십과 시민사회의 집합적 노력을 통해 극복하면 사회적 연대와 호혜적 협력의 습관을 강화해 이후 다른 사회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역량을 키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반면 위기를 빠르게 끝낼 수 있는 자원과 기술을 독점하고 있으면서도 정치적 이해관계와 이념투쟁에 몰두해 위기해결을 지연한다면, 위기가 끝난다 해도 시민적 역량이 강화되기는커녕 더 고갈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팬데믹의 '엔드게임'이 중요한데, 미국의 경우 '해피엔딩'으로만 끝나는 것 같지 않아 씁쓸하다. 이미 6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아직도 하루에 수백 명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해피엔딩'은 이미 물 건너간 것이겠지만 말이다.



임채윤 미국 위스콘신대학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