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 막히고 푹 꺼지고…휠체어·뚜벅이 진땀나는 일산 보행로

입력
2021.06.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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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규 고양시의원 100일간 1200㎞ 걷기 
보도 중간 전신주·가로수·쓰레기 불편 초래
학교 앞 보행로 실종돼 차와 뒤섞여 등하교
"계획도시 환경 이정돈데 다른 도시들은…"

여정 첫날이던 2월 15일.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횡단보도를 작정하고 들여다보자 눈살이 찌푸려졌다. 반듯해야 할 곳에 턱이 있었다. 높이가 20㎝에 달하는 곳도 눈에 띄었다. '휠체어나 유모차가 저길 넘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맞은편에서 휠체어에 의지한 한 장애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진땀을 흘리며 한참을 돌아 보행로로 올라섰다.

며칠 뒤엔 보도블록이 툭 튀어나오거나 폭 꺼진 채 방치된 우둘투둘한 길도 만났다. 포장이 뜯겨나가 자칫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길도 여러 차례 지나쳤다. 보행로 중간에 가로수, 전신주가 떡 하니 선 보도에선 행인들이 어깨를 웅크리고 지났다. 두 명이 한꺼번에 지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이 길의 주인은 누구인가.’

국내 1기 신도시 중의 하나인 경기 고양시 보행로 1,200㎞를 직접 걸은 김완규 고양시의원이 ‘고양 보행로 보고서’를 냈다. 지난 2월 15일부터 지난달 25일까지 100일간 일산신도시를 중심으로 매일 10여㎞씩 시 전역을 걸으면서 기록한 글이다.

그는 3일 “뚜벅이(주로 걸어 다니는 사람)도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걷기 시작했다”며 “직접 걸어보니 ‘계획도시’ ‘신도시’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초기에 만난 그 길들은 후반부에 학교 앞에서 목격한 보행보도에 비하면 양반이다. 일산서구에 있는 현산중 정문 앞에선 보행로가 끊겨 있었다. 그는 “지금 있는 보도도 등하굣길의 많은 학생을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며 “인도가 없어 학생들이 차와 뒤섞인 채 차도를 걸어 다녔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무단으로 버려진 쓰레기 더미가 쌓인 길, 불법 주차 차량이 점령한 보행로, 아무런 보행자 안전망 없이 진행 중인 산책로 공사장 등 ‘보행로’라는 이름이 무색한 길이 많다.

김 의원은 “보행 약자에게도 걷기 편한 환경은 도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며 “그러나 장애인 유도표시가 없다든가 턱이 높아 장애인들의 이동을 가로막는 사례는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점은 고양시정연구원이 지난 3월 발행한 ‘고양시민 이동행태 및 보행만족도 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보행로에 있는 각종 장애물로 시민의 삶 만족도가 상당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행로 만족도 질문에 불만족이 23.8%, 만족이 23%로 집계됐다. 횡단보도 턱 상태에 대한 항목에서 만족스럽다고 답한 사람은 4명 중 1명꼴인 24.8%에 그쳤다. 보도블록 상태에 대해서도 23.5%가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계획도시, 신도시 내 보행환경이 이 정도면 일반 도시의 사정은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며 “각 지자체가 행정을 펼치면서 유심히 봐야 할 대목이고 고양시에도 대책 마련을 요구해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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