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방치, 늑장 대처… 공군 성추행, 8년 전 '노 소령 사건' 판박이

입력
2021.06.0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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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적인 군대 특성이 피해 심화
"처벌 넘어 성폭력 구조 뜯어내야"

2013년 10월 16일 육군 여성 장교 오모 대위는 자신의 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상사인 노모 소령에게 10개월간 폭언과 가혹행위, 성추행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노 소령은 약혼자도 있던 오 대위에게 "하룻밤만 같이 자면 군 생활을 편하게 해 주겠다"며 성관계를 요구했고, 오 대위가 이를 거부하자 야간근무를 시키거나 서류를 집어던지는 등 지속적으로 보복했다.

공군 여성 부사관이 선임 부사관의 성추행과 신고 이후 지속된 회유·협박을 비관해 숨진 사건이 발생하면서, 여러 번의 비극적 사태를 겪고도 좀처럼 성폭력 사건이 근절되지 않는 군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이 여러 면에서 8년 전 발생한 '노 소령 성추행 사건'과 닮은꼴이라는 점에서 충격은 더하다. 군 내 성폭력이 비슷한 행태로 반복되는 만큼 관련 제도와 문화 전반을 혁신하는 해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8년 세월에도 닮은꼴 두 사건

3일 피해자 측, 군 관계자, 군인권센터 등은 '공군 부사관 성추행 사건'과 '노 소령 성추행 사건'을 비교하며 "피해자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간 요인들이 서로 많이 닮았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두 피해자들은 모두 군의 더딘 사건 대응에 직면했다. 공군 A중사의 경우 올해 3월 2일 B중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지만 부대 군사경찰은 4월 초에야 B중사를 강제추행 혐의로 군 검찰에 송치했다. 군 검찰 역시 A중사의 심리 상태를 이유로 피해자 조사를 미뤘고, 국선변호인도 A중사에게 비협조적 태도를 보였다. 오 대위는 주변에 노 소령의 행패를 알고 있는 이들이 다수 있었지만, 노 소령에 대한 수사는 오 대위의 유서가 공개된 후에야 이뤄졌다.

군의 늑장 대응 와중에 가해자 측으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한 점도 두 피해자의 공통된 경험이다. A중사는 성추행 피해를 먼저 상사에게 알렸지만 상사는 되레 합의를 종용했다. 가해자 분리 조치도 피해 신고 보름 뒤 B중사가 근무지를 옮기면서 뒤늦게 이뤄졌다. 부대 군사경찰 신고 이후에도 가해자와 상사들의 회유와 협박은 계속됐다. A중사 측 변호인은 "가해자는 A중사를 상대로 '죽어버리겠다'며 자해 협박을 했고, 상관인 준위와 상사는 '없던 일로 해달라' '살면서 한번은 겪는 일'이라며 합의를 종용했다"고 말했다. 오 대위의 경우 당시 보직이 고충담당관이었지만 열 달에 걸친 가혹행위를 당하는 동안 정작 자신은 보호받지 못했다.

군의 폐쇄적 구조도 피해자들을 고립시켰다. 군 판사 출신인 강석민 법무법인 백상 변호사는 "업무 내・외적으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장악했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구조가 동일하다"고 말했다. 공군 출신 조모씨는 "A중사와 B중사는 정비직을 맡는 부사관이었는데, 이들은 병사나 장교와 달리 실질적・장기적 업무를 해야 해 일대일 도제식 교육을 받는다"며 "피해를 공론화하기 어려운 분위기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 성범죄 부추기는 제도·문화 혁신해야

군 당국은 '노 소령 성추행 사건' 등을 거치며 2015년 3월 '성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성범죄 가해자는 퇴출을 원칙으로 하고, 성범죄 묵인・방관 행위도 처벌하며, 성고충상담관 등 전담 직책을 신설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들 대책이 현장에 적용되지 않거나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은폐에 치중하는 군 문화도 제도 개선 효과를 상쇄한다.

군이 민간 영역보다 성폭력 피해가 만연하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3년 주기로 발간하는 '군대 내 인권상황 실태 조사’ 2019년 판을 보면 여군 설문 대상자 중 11.4%가 조사 시점 기준 1년간 성희롱 피해를 봤다고 응답했다. 2016년의 8.4%보다 증가한 수치다. 반면 여성 근로자를 대상으로 여성가족부가 2018년 실시한 조사에서는 '최근 3년간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14.2%였다.

반복되는 군 성폭력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가해자 처벌은 물론 사건 재발을 용인하는 군 문화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강석민 변호사는 "공군 부사관 성추행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인과관계가 밝혀지도록 수사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건을 빨리 수습하고 조직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데 골몰하는 군 특성이 오히려 반성을 저해한다"며 "성폭력 대응 제도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군 문화 전반이 쇄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은서 기자
오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