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 반성문 쓴 송영길  "통렬 반성... 이제는 국민의 시간"

입력
2021.06.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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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청년들의 상처 헤아리지 못했다"
민심·당심 사이에 어정쩡한 사과 지적도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일 '조국 사태'와 관련해 "민주당은 국민과 청년들의 상처 받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점을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며 반성문을 썼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당내 온정주의에는 "우리들이 과연 자기 문제와 자녀들의 문제에 원칙을 지켜왔는지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며 비판했다.

조 전 장관의 회고록 '조국의 시간' 출간을 계기로 친문재인계 및 강성 지지층 사이에서 '조국 재평가'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내로남불' '공정' 논란과 같은 민주당의 아킬레스건이 재부각하자, 당대표의 공식 사과를 통해 진화에 나선 것이다.


조국 등 86그룹 '내로남불' 작심 비판

송 대표는 이날 '민심경청 대국민 보고회'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이제는 국민의 시간"이라는 말로 운을 뗐다. 조 전 장관 회고록 제목처럼 '조국의 시간'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여권의 '정치적 족쇄'인 조국 사태에 더 이상 갇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당이 조국 사태를 두고 '친(親)조국 대 반(反)조국' 구도로 분열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조 전 장관에게 온정적 태도를 보여 온 당내 '86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 생)의 이중성도 비판했다.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면서 공정과 정의를 누구보다 크게 외치고 남을 단죄했던 우리들이 과연 자기 문제와 자녀들의 문제에 그런 원칙을 지켜 왔는지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조국 사태가 2030세대에게 '불공정의 상징' '내로남불의 전형'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게 송 대표의 문제 의식이다. 조 전 장관 가족을 둘러싼 논란 중 자녀 입시 부분에 한정했지만, 조국 사태에 대해 침묵한 채 민심을 되돌리는 것은 쉽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송 대표는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지위와 인맥으로 서로 인턴 시켜주고, 품앗이하듯 스펙 쌓게 해주는 것은 딱히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런 시스템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수많은 청년에게 좌절과 실망을 주는 일"이라고 조 전 장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친문계 반발 의식해 윤석열 끌어들여

조국 사태에 대한 민주당 지도부의 사과는 2019년 10월 이해찬 대표에 이어 두 번째다. 이 전 대표는 "국민이 느꼈을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감을 깊게 헤아리지 못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매우 송구하다"며 세 줄짜리 사과를 했다. 송 대표는 200자 원고지 3매가량을 할애하면서 수위와 강도를 높였다.

송 대표 측 관계자는 "중도·청년층은 여당이 조 전 장관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며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며 "내년 대선을 앞두고 조국 사태를 털고 가야 한다"고 했다. 친문계·강성 지지층의 예상된 반발에도 송 대표가 외연 확장을 위해 악역을 자처한 셈이다.

다만 송 대표는 조 전 장관을 둘러싼 법률적 논란에 대해선 "재판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또 "조 전 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의 기준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가족 비리와 검찰 가족의 비리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했고, 조 전 장관의 회고록에 대해선 "일부 언론이 검찰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쓰기 하면서 융단 폭격해온 것에 대한 반론 요지서로 이해한다"며 검찰과 언론을 각각 비판했다.

송 대표가 조국 사태를 사과하면서도 윤 전 총장을 끌어들인 것은 당 주류인 친문계와의 전면전을 피하겠다는 현실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를 두고 민심과 당심 양측 모두 만족시키지 못한 어정쩡한 사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 전 장관 가족의 사모펀드 의혹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는데, 지난해 12월 1심 판결에서 일부 무죄판결이 난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박원순·오거돈 성비위에 "두고두고 속죄"

민주당 소속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 사건에 대해선 '권력형 성범죄'라고 규정했다. 송 대표는 "권력형 성비위 사건에 단호히 대처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기본적인 조치조차 취하지 않은 무책임함으로 인해 피해자와 국민 여러분께 너무나도 깊은 상처와 실망을 남긴 점 두고두고 속죄해도 부족하다"고 사과했다.

또 "정부 정책의 미흡함으로 인해 집값이 올랐다"며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인정했다. 주택 공급을 위한 '누구나집' 프로젝트 시행도 약속했다. 청년·신혼부부 등 무주택 실수요자가 집값의 10%만 있으면 최초 분양가로 집을 살 수 있는 정책이다. 검찰·언론개혁 필요성도 언급했으나 구체적 시기는 밝히지 않아 '속도 조절'을 시사했다.

정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