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성범죄 전쟁’ 선포했지만... 軍은 달라진 게 없었다

입력
2021.06.02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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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국방부가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원년(元年)이었다. 직전인 2014년 여성 부사관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육군 17사단장이 긴급체포돼 실형을 선고받고, 전방에서 근무하는 여성 대위가 "하룻밤만 같이 자면 군생활을 편하게 해주겠다"는 직속 상관의 지속적인 성희롱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군내 성범죄가 봇물 터지듯 수면 위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자 군 당국은 2015년 3월, 성범죄 가해자는 퇴출을 원칙으로 하고 직속 상관이나 해당 부대의 인사와 감찰, 법무 담당자가 성범죄를 묵인하거나 방관해도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의 '성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2년이 지나면 말소되던 성희롱 기록을 전역할 때까지 남겨, 진급에서 배제하기로 했고, 성인지 교육도 연 1회에서 4회로 늘렸다. 성범죄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게 핵심 취지였다. 앞서 군 당국은 본보기 차원에서 2014년 12월, 여군 장교에게 상습적으로 "만나자"는 문자를 보낸 중령을 소령으로 강등시켰다. 성 군기 위반에 따른 최초의 계급 강등 조치였다.

이런 조치에도 지난달 21일 성추행 피해를 당한 공군 여성 부사관 A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군내 성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원인으로 △폐쇄적인 조직 문화 △엄격한 지휘체계 △지휘관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인사고과 제도 등이 꼽힌다.

특히 A중사와 같은 부사관의 경우 임관 3년차에 장기 복무 심사를 하기 때문에 진급을 악용한 성범죄 타깃이 돼 왔다. 지휘관들이 진급을 빌미로 성범죄를 저지르고 입막음을 하는 사례가 계속된 것이다. 국방부가 2014년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성범죄 피해 여군 가운데 하사가 59.5%로 가장 많았다.

성범죄 근절 차원에서 가해자에 대해 '원 스트라이트 아웃제'를 적용한 이후 은폐 시도가 빈번해졌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성범죄로 입건될 경우 강제전역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가해자나 상관들이 "없던 일로 눈 감아 달라"며 피해자를 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도 방조범으로 엄벌 대상이다. 이같은 인식 하에 행해지는 조직적 은폐와 회유를 가중 처벌하는 등 강력한 조치가 없으면 군내 성범죄 근절은 요원하다. 실제 A중사도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에 해당 부대에 파견 왔던 다른 부사관에게 성추행을 당했지만 "한 번만 봐달라"는 요청에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고 이같은 비극으로 이어졌다.

정승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