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직장괴롭힘’ 황당 대처... ‘시말서 한 장’ 종결

입력
2021.06.02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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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청 괴롭힘 판단, 2명 조치 요구
수목원관리원, 시말서 제출로 완료
피해자 “우울증 치료까지 2차 가해”

산림청 산하 한국수목원관리원이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시말서 제출로 사건을 마무리해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고 있다.

1일 대전고용노동청에 따르면 노동청은 지난 3월 한국수목원관리원 직원인 40대 A씨 진정사건을 직권 조사한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노동청은 이를 근거로 B실장 등 2명을 가해자로 지목해 조치할 것을 수목원관리원에 통지했다. 노동청은 A씨가 “카이스트 겸직교수 등 비인정 경력 5년치를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자, B실장 등이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A씨의 예전 경력 등을 제3자에게 퍼뜨리고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파악했다.

A씨는 “정당한 경력 인정 요구에 '소송으로 대응하라'며 6개월 동안 묵살하는가 하면, 많은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나를 조직을 괴롭히는 골때리는 사람으로 칭했고, 허위 사실까지 만들어 소문냈다”고 말했다.

수목원관리원은 B실장 등에게 시말서 제출과 재발방지 당부로 사건을 종결했지만, 내부 징계범위에도 포함돼 있지 않아 면피성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목원권리원의 임직원 징계는 주의조치·견책·감봉부터 중징계인 정직·강등으로 나뉘는데, 시말서 제출은 주의조치나 견책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게 수목원관리원 감사실의 설명이다. 적절한 징계를 기대했던 노동청도 이런 조치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수목원관리원의 조치는 셀프징계 논란에도 휩싸였다. 임직원 징계는 감사실 권한인데, B실장이 책임자로 있는 경영지원실에서 이를 기안하고 처분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감사실은 당초 B실장에 대해 중징계 조치를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을 만큼 고통을 겪고 있는데, 가해자는 반성문 쓰고 책임을 피했다”며 “2차 가해까지 시달리는데 법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한 개정 근로기준법에선 가해자 처벌 규정이 없어 실효성 논란이 제기돼 왔다. 수목원관리원 관계자는 "절차상 문제나 하자는 없었다"며 "노동청에서도 문제가 없었기에 사건을 종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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