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최인희(38)씨는 최근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작은 칼로 나무를 깎아 숟가락과 젓가락, 버터나이프, 주걱 등을 만드는 ‘우드 카빙(Wood Carving·목각)’이다. 육아와 집안일로 온종일 바쁘지만 틈이 날 때마다 도구상자를 열고 나무를 깎는다. ‘슥슥’, ‘사각사각’하는 나무 깎는 소리에 어느새 마음이 차분해진다. “코로나로 육아부담이 커지고,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어요. 전쟁이 된 일상에서 저만의 힐링 아이템이 필요했는데, 간편하게 할 수 있고, 나무 만지는 느낌과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줘서 불끈불끈 솟아나는 짜증이나 화를 가라앉히는 데 효과만점이에요.”
나무 깎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코로나에 집에서 혼자 작은 나무로 숟가락과 조리도구, 도마와 작은 그릇 등 식기를 만드는 우드 카빙이 새로운 힐링 아이템으로 각광받고 있다. 설명서와 나무, 칼, 도구 등이 포함된 DIY키트를 온라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데다, 유튜브 등에는 나무 깎는 요령, 칼 고르는 법 등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어 누구나 쉽게 해볼 만하다. 온라인 강의 플랫폼인 ‘클래스101’ 관계자는 “코로나 영향으로 집에서 할 수 있는 우드 카빙 관련 온라인 강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며 “주로 2030세대들이 많이 듣지만, 중·장년층의 문의도 꽤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클래스101의 우드 카빙 관련 강의 수는 3개에서 5개로 늘어났다.
우드 카빙으로 만드는 것은 주로 식기다. 호두나무, 흑단나무, 느티나무 등의 나무토막을 깎아 숟가락과 젓가락, 주걱이나 쿠킹 스푼 등 조리도구 등을 만든다. 테이블이나 의자와 같이 부피가 큰 가구들은 별도의 작업장이 필요한 데다, 숙련된 기술을 요구하는 반면 식기나 생활소품은 칼과 나무만 있으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숟가락을 하나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3시간 안팎. 젓가락이나 포크 등은 좀 더 섬세하게 깎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린다. 우드 카빙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는 공방 ‘스푼풀’의 황메리 대표는 “수저나 식기는 초보자들이 만들기에도 어렵지 않다”며 “다만 무리하게 깎아내거나 힘 조절에 실패하면 다치거나 형태가 망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일정한 힘으로 얇게 깎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캠핑 등 야외활동이 늘어나면서 캠핑족들도 나무를 깎기 시작했다. 캠핑을 자주 가는 김민형(32)씨는 “캠핑할 때는 인위적인 플라스틱이나 차가운 스테인리스보다 감성적인 나무 식기를 많이 쓰게 된다”며 “캠핑할 때 쓰려고 수저를 깎기 시작했다가, 이제는 캠핑 가서 불을 피우고 그 앞에 앉아 재미 삼아 나무를 깎는다”고 했다.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 숟가락 하나 깎는데만 족히 3시간이 소요되는 이 아날로그적 취미에 심취하는 이유는 뭘까. 황 대표는 “요즘에는 어딘가 깊게 몰입하는 일이 매우 드물다”며 “항상 바쁘게 지내다가 사각사각 소리를 들으면서 나무를 깎다 보면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렀지 싶을 정도로 집중할 수 있다는 게 우드 카빙의 매력”이라고 했다.
유튜브에는 나무 깎는 소리를 녹음한 ‘힐링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도 등장했다.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숲 속 오두막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황 대표는 “우드 카빙은 오감을 자극한다”며 “저마다 무늬가 다른 나무를 보고(시각), 나무를 다듬고(촉각), 나무를 깎고(청각), 나무의 향을 맡는(후각) 일련의 과정이 마음을 안정시키고 감정을 다스리는 데 도움을 준다(공감각)”고 했다.
칼로 나무를 반복적으로 깎는 행위지만 약간의 창의력도 발휘할 수도 있다. 손잡이에 그림을 그려 넣거나, 깎는 법에 따라 형태를 바꿀 수도 있다. 오일을 여러 번 덧발라 진한 색을 낼 수도 있고, 색을 덧입힐 수도 있다. 우드 카빙 공방 ‘필드오즈’의 오지영 대표는 우드 카빙을 요리에 비유했다. “정성껏 요리를 차려 먹으면 나를 돌보는 듯한 기분이 들고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날 것의 재료를 직접 다듬어서 만들어 쓰면 정서적 위안을 받을 수 있어요. 좀 서툴지만 자신만의 도구를 갖췄다는 작은 성취감도 얻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