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나비 효과? '지역 갈등' 가고 '세대 대결' 온다

입력
2021.06.0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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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갈등 구조가 '영·호남 지역 대결'에서 '세대 대결'로 재편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 당권 주자인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불붙인 '세대교체 열풍'을 청년 정치인들이 '개헌론'으로 이어받은 것이 그 징후다. 청년 정치인들은 당적과 상관 없이 "40세 이상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건 불공정하다"며 헌법을 고쳐 대선 출마 나이 제한을 없애자고 주장한다. 오륙남(5060세대 남성) 중심 기득권 정치 시스템에 균열을 내고 청년 당사자 정치의 문을 활짝 열어 달라는 직설적 요구다.

성장이 둔화된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세대 갈등은 필연이다. 팍팍한 현실에 치여 노년층 부양 의무에 반발하는 젊은 세대와 사회·경제적 자산의 힘으로 무장한 채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기성세대의 충돌이 정치의 전면에 등장할 날이 머지않았다.

세대교체 바람을 바라보는 기성정치인의 표정은 시큰둥하다. "한국에는 장유유서 문화가 있다"(정세균 전 국무총리), "한때 지나가는 바람"(홍준표 무소속 의원)이라며 각을 세운다.

2030의 도발 "정치, 잘하는 것 맞나요"

31일 여야 청년 정치인들은 '정치의 세대교체'를 주장했다. 이동학(39) 더불어민주당 청년 최고위원은 "대선 출마 자격을 만 40세로 규정한 현행 헌법은 장유유서 헌법"이라며 개헌을 요구했다. 전날 류호정(29) 정의당 의원의 "마흔이 되지 않아도 대통령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보탠 것이다. 김병민(39)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도 "'이준석 신드롬'이 계속되려면 청년들의 정치 진입 문턱을 낮추는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2030세대 정치인들은 '기성 정치의 장신구' 되기를 거부한다. "대선은 특정 세대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나설 수 있는 기회여야 하는데, 2030세대 후보와 공정하게 경쟁할 자신이 없는 게 아니냐"(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고 따져 묻는다. 산업화·민주화 세대가 만들어 놓은 '게임의 룰'이 공정하지 않다고 볼 뿐 아니라, 그들의 능력에도 의문을 표하는 것이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청년들은 자신들이 '부모보다 못 사는 최초의 세대'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며 "기성세대에게 정치를 맡겨 두면 자신들의 미래가 안 보인다고 느낀다"고 분석했다.


2030세대 vs 506070세대 충돌

2030세대와 기성세대의 정치적 충돌은 예고된 수순이다. 저출산·고령화로 청년세대가 노인 부양의 책임을 지게 되면서 이해관계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고갈을 걱정해야 할 국민연금은 노년세대에겐 혜택이지만, 미래세대에겐 짐이다. '공짜 지하철'도 노인들에겐 경로우대 혜택이지만, 청년세대에겐 경제적 부담이다. 모두 오륙남 기득권 정치인들이 설계한 시스템이다.

그러는 사이 청년들의 삶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할 만큼 팍팍해졌다. 취업난에 일자리를 얻기 힘들어졌고, 집값이 폭등하면서 집을 사는 건 엄두도 낼 수 없다. 인구학자인 전영수 한양대 교수는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며 기성세대와 586세대의 도덕적 타락을 확인한 2030세대 사이에선 '완전히 바꿔보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었다"며 "세대론 상륙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기성정치와 충돌? 세대 반란 성공?

한국 정치에서 '세대교체론'이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20대에 정치를 시작한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40대 기수론'을 외치며 권력의 핵심부에 진입했다.

최근의 청년 정치는 색채가 다르다. 2030세대가 특정 정당이 추구하는 이념과 철학보다 '내 이슈'를 중시하다 보니, 청년 정치인들은 '계파의 막내'에 머무르길 거부한다. 대신 디지털 시대의 직접 민주주의를 이용해 세력화를 도모한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 등 새로운 방식의 소통 수단이 생겨나면서 전통 정치에서 중요한 조직과 자금의 중요성이 옅어졌다"며 "청년 정치가 전통 정치 문법을 깰 수 있을지 흥미롭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세대 갈등' 심화는 세계적 흐름이다. 미국에서는 인종차별과 이민문제, 기후변화 등에 민감한 2030세대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대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데 기여했다. 유럽의 청년세대는 브렉시트에 반대하며 목소리를 냈다.

강원택 교수는 "한국에서는 2030세대가 적극 만들어가는 흐름과 586정치에 싫증을 느낀 흐름이 맞물려 세대교체론을 키우고 있다"며 "앞으로도 정치권에 상당한 충격을 줄 것"이라고 봤다.

김지현 기자
원다라 기자
박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