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대신 용서”…제주도·의회·강정마을 상생화합 공동선언

입력
2021.05.31 12:52
원희룡 지사·좌남수 도의장 고개 숙여
강정마을회 사과 수용하고 협력 요청
일부 반대 주민들 “기만적 행위” 반발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제주해군기지) 건설 문제로 고통을 받아왔던 서귀포시 강정마을 주민들이 14년 만에 제주도 및 도의회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제주도와 제주도의회, 강정마을회는 31일 오전 10시 서귀포시 강정 크루즈터미널 앞에서 ‘상생화합 공동선언식’을 개최했다. ‘다시 부는 상생 화합의 바람’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선언식은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인해 14년 간에 걸쳐 이어져 온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의 요청으로 마련돼 의미가 더 컸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이날 제주해군기지 입지 선정과 건설 과정에서 발생했던 국가공권력의 과오를 사과하고, 향후 상생협력 협약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원 지사는 “제주해군기지 입지 선정과 건설 과정에서 큰 상처를 입은 마을 주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제주도정이 불공정하게 개입했고 주민의견 수렴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채 무리하게 추진했다”고 사과했다. 그는 이어 “강정마을이 예전처럼 화목하고 풍요로운 마을로 돌아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좌남수 제주도의회 의장도 “2009년 12월 본회의에서 (제주해군기지) 절대보전지역변경 동의안과 환경영향평가서 협의내용 동의안이 처리됐기 때문에 도의회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도의회 의장으로서 깊은 유감을 표하고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부디 의회의 사과를 너그럽게 받아주시길 부탁드린다. 상생화합 선언을 계기로 그동안의 갈등과 대립은 막을 내리고 새로운 화해와 상생의 시대를 열어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희봉 강정마을회장은 “뿌리 깊게 내린 갈등과 반목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도지사와 의장의 사과를 받고 용서를 함으로써 미래로 나아가려고 오늘 자리를 마련했다”고 원 지사와 좌 의장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이어 “앞으로 공동체회복 사업들이 차질없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도, 도의회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강정마을이라는 이름 옆에 갈등이라는 단어가 다시는 자리 잡을 수 없도록 많이 도와달라”고 말했다.

도와 강정마을회는 올해 초부터 상생협력 협약 방안에 대한 협의를 이어왔고, 지난달에 250억 원 규모의 강정지역주민 공동체회복 지원기금을 조성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최종 협약안을 마련했다. 양측은 다음 달 중에 협약식을 체결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날 선언식에 대해 일부 주민들의 반발하는 등 주민 내부에서도 입장이 갈리면서 완전한 갈등 해결까지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날 공동선언식에 앞서 강정마을해군기지반대주민회와 강정평화네트워크는 행사장인 강정크루즈터미널 진입로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동선언식을 규탄했다.

해군기지 반대주민회 등은 “상생화합으로 둔갑한 정부의 보상과 회유는 사과가 아닌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과 이를 지지하고 함께 아파한 강정주민, 제주도민과 국민들을 향한 기만”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이번 사과가 그간 꾸준히 요구해 온 진상규명이나 국가폭력의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이 아니라 마을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한 허울 좋은 지역개발사업이라는 것이 문제”라며 “돈으로 공동체의 회복을 말하는 것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김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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