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레놀 씨가 말라 큰 일?…약사들 "대체 약 많아요"

입력
2021.05.29 12:00
마스크 대란 이어 이번엔 '타이레놀 품귀' 현상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함유 약이 대체품
"방역당국이 '대체약 괜찮다'고 꼭 알렸으면"

#28일 경기 고양시에 사는 직장인 박모씨는 부모님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대상자가 되자 '타이레놀'을 챙겨 드리러 약국을 찾았다. 그런데 약국에선 1인당 두 통까지만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약사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자가 늘어나면서 타이레놀을 찾는 손님이 많아져 구매 제한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속도를 내며 28일 전체 국민의 10%가 한 번 이상 백신을 맞고 잔여 백신 예약자가 몰리면서 '백신 준비물'로 알려진 타이레놀을 찾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 일부는 마치 1년 전 마스크 대란처럼 '타이레놀 품귀 현상'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누리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타이레놀 대체 약품 정보'를 공유하며 백신 접종 준비에 열심이다.

'마스크 대란'과 비슷? '1인당 두 통 제한' 약국도

타이레놀 부족 현상은 일찍이 시작됐다는 게 약사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타이레놀이 감염 예방에 효과가 있고, 백신 접종을 시작했을 때 '타이레놀을 꼭 먹어야 한다'는 얘기가 돌면서 코로나19 시대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타이레놀이 이처럼 코로나19 시대에 주목을 받게 된 건 방역당국과 세계보건기구(WHO)의 발표가 큰 영향을 미쳤다. 타이레놀의 주요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발열 및 두통, 신경통, 근육통을 가라앉히는 데 효과가 있다. 또 일반의약품 판매가 허용된 이후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해열진통제란 점도 장점이다.

WHO는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지난해 3월 해열진통제인 이부프로펜이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의심 증상이 있을 때 아세트아미노펜 사용을 권고했다. 이에 전 세계적으로 타이레놀 사재기 현상이 일어났다.

국내 코로나19 백신 접종 시작 단계였던 4월 8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접종 후 불편한 증상이 있으면 타이레놀과 같은 소염 효과가 없는 진통제를 복용하시는 게 적절하다"고 밝혔다. 당시 방역당국이 특정 상품을 홍보했다는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타이레놀 품귀 현상은 지난해 '마스크 대란'을 떠올리게 한다. 일반인이 구매하기 어려운 수준을 넘어 수급 불안정 상태가 길어지면서 약사들까지 구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65세 이상를 대상으로 한 백신 접종이 시작된 27일 이후 상황은 더 심해졌다. 약사들이 "타이레놀의 씨가 말랐다"고 말할 정도다.

서울 종로구에서 약국을 운영 중인 약사 김모씨는 기자와 통화에서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구매할 수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있지만 재고가 없는 걸로 나온다"며 "구하려면 친한 도매 회사 영업 담당자에게 미리 '이번에 약이 들어오면 사고 싶다'고 얘기를 해야 몇 개라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백신 접종이 가능한 병원과 같은 건물을 쓰는 약국에선 상황이 더 심하다. 경기 고양시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시민들이 백신을 맞으러 병원에 가기 전 약국에 들러 타이레놀을 사는 게 필수 코스가 됐다"며 "지금 남은 타이레놀이 열 통 정도인데, 이게 다 팔리면 동이 난다. 타이레놀을 더 구매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약사는 임시방편으로 타이레놀을 1인당 1회 두 통까지 구매할 수 있게 했다. 일부가 한꺼번에 많은 양을 사려고 하다 보니 건물 윗층에 있는 병원 측과 상의해 결정했다.

누리꾼 "아세트아미노펜 단일 제제 약이면 돼요"

품귀 현상 탓에 많은 누리꾼은 SNS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타이레놀을 못 구하면 어떻게 되느냐'는 걱정 담긴 글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대체품이 많아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약사들의 한목소리다.

타이레놀 주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이 들어간 다른 해열진통제를 먹으면 되기 때문이다. 누리꾼들은 이에 타이레놀을 대체할 수 있는 약 정보를 올리며 대체품 알리기에 나섰다. 한 누리꾼은 "주변 약국에서 타이레놀이 품절이라고 하면 '아세트아미노펜 단일 제제'를 달라고 하면 된다"고 적었다.

실제 약학정보원 홈페이지에서 아세트아미노펜을 검색하면 1,273개나 검색된다. 제품명에 아세트아미노펜을 쓴 약은 24개가 나온다. 이 중에는 아세트아미노펜 외 다른 성분이 포함된 약들도 있다.

일반인에게 알려진 약 중에는 '게보린정'과 '그날엔코프플러스연질캡슐'도 포함됐다. 다만 두 제품은 아세트아미노펜 외에 다른 성분이 포함됐다. 한 알에 들어간 아세트아미노펜 함유량도 타이레놀보다 적다. 타이레놀은 500㎎이 들어간 반면, 게보린정과 그날엔코프플러스연질캡슐에는 각각 300㎎, 200㎎이라고 나온다.

"타이레놀 고집하는 고객 많아…정부가 설명해야"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타이레놀이 강하게 인식된 탓에 타이레놀만 고집하는 고객이 많다는 게 문제다. 약사들은 이에 타이레놀과 이름이 비슷하거나, 타이레놀과 비슷한 빨간 상자로 포장된 약을 권유한다고 했다.

경기 고양시 약사 최모씨는 "고령일수록 타이레놀만 사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 경우 타이레놀 한 통과 대체 약을 섞어 드시라고 하면 사 가신다"고 말했다.

약사들은 타이레놀 품귀 현상을 막기 위해 방역당국이 적극적으로 설명하며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약사 김씨는 "정부가 품귀 현상에 대해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설명이 없어 아쉽다"면서도 "방역 당국이 브리핑 때 '타이레놀과 성분이 같은 약은 먹어도 괜찮다, 효과가 있다'고 설명해 주면 국민들도 불안감을 덜 수 있고, 현장에서도 수월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타이레놀 품귀 현상이 심상치 않자 정부와 약사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한약사회는 앞서 27일 입장문을 내고 "타이레놀은 다국적 제약사 얀센에서 수입하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해열제로, 국내에는 한미 써스펜이알, 부광 타세놀이알, 종근당 펜잘이알 등 타이레놀과 성분과 함량이 동일한 수많은 의약품이 시판되고 있다"며 "국민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서 발생한 문제는 정부가 바로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날 국내에서 허가받은 아세트아미노펜 제제의 일반의약품 정보를 의약품안전나라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언론을 통해 시럽을 제외한 70종의 아세트아미노펜 단일 제제 약품 목록을 공개했다.

류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