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여행 방식은 지구에 해롭다

입력
2021.05.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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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하나. 코로나로 관광객이 끊긴 영국 노섬벌랜드주 해안가 섬에 멸종위기종인 퍼핀(댕기바다오리) 떼가 몰려들었다. 퍼핀은 관광객이 사라진 자리에 알을 낳고 둥지를 틀었다. 퍼핀의 개체 수 안정화로 지난해 12월 미국어류야생동물보호국(USFWS)은 퍼핀을 멸종위기종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풍경 둘. 코로나로 억눌렸던 여행 수요가 최근 백신 접종과 함께 폭발하고 있다. 일부 여행사는 백신 접종자를 겨냥한 해외 패키지 상품을 선보이고 있고, 코로나 종식 이후 사용할 수 있는 항공과 숙박 예약이 급증하고 있다. 지금껏 못 간 여행을 만회하겠다는, 이른바 ‘보복 여행’(revenge travel)이다.

두 가지 풍경이 의미하는 바는 명쾌하다. 인간의 여행은 지구에 해롭다. 코로나로 인해 잠시 주춤했지만, 이 들끓는 여행 욕망의 고삐를 잡아 죄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여행할 지구 자체를 기대할 수도 없을 것이다.

홀리 터펜의 책 ‘지속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는 그런 점에서 보복여행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이들이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다. 우리의 여행이 환경을 파괴하고 현지인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지속가능한 여행의 길을 찾자고 제언한다.


저자는 2008년 비행기를 타지 않고 세계 여행을 하면서 ‘책임 여행’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지속가능한 여행을 알리는 전도사가 됐다. 책이 구체적인 수치로 내놓는 오늘날 우리의 여행 방식은 부인할 수 없이 지구를 망치는 길이다.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8~12%가 관광 산업에 의해 발생한다. 항공 산업은 일 년 동안 독일 사람 전체가 배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탄소를 배출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여행 증가 속도다. 2019년 국제 항공편 승객은 14억 명에 달한다. 전 세계 인구의 약 20%가 움직이는 셈으로, 세계 관광기구의 예측보다 2년이나 빨랐다.

물론 책이 우리의 여행이 지구에 얼마나 해로운지만 알려주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덜 자주, 더 느긋하게, 더 나은 방식으로 여행할 수 있는 구체적 지침을 알려주는 친절한 가이드북에 가깝다. 대원칙은 단순하다. 덜 붐비는 곳에 가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숙소에 머무르고,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다.


먼저, 어디로 갈 것인가의 문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2018년 ‘올해의 단어’ 최종 후보로 ‘과잉관광’을 꼽았다. 과잉관광이란 환경과 지역사회에 부담을 주는 관광으로, 지나치게 몰리는 관광객은 지역 사회를 망가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저자는 버킷리스트, ‘~한 관광지 TOP10’, SNS에서 유명한 관광지 대신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을 방문할 것을 제안한다. 수도 대신 제2의 도시를, 외딴 섬을, 발길이 적은 등산로를 택하는 것이다.

무엇을 타고 갈 것이며, 여행지에서의 이동수단은 무엇으로 할 것인지도 중요하다. 런던에서 파리까지 열차를 타면 비행기로 이동할 때보다 탄소 배출량을 90%나 줄일 수 있다. 배나 자전거, 카약, 패들처럼 직접 땀 흘려 움직이는 탈 것도 좋은 선택지다. 숙소 선택도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다. 4성급 호텔은 소규모 실속형 숙소보다 탄소를 4배나 더 배출한다.

재생 에너지를 활용하는 숙소를 선택하고, 짐을 쌀 때는 일회용품 대신 재사용 가능한 물건을 챙기고, 자주 이동하기보다는 한곳에서 느긋하게 머무른다. 저자에 따르면 “지속가능한 여행은 여행의 한 종류나 기준이 아니라 모든 여행, 여행 동기, 목적지에 적용되는 사고방식”에 가깝다.


물론 여행 가이드이니만큼 지켜야 할 수칙만 늘어놓지 않는다. 책의 마지막 챕터에는 저자가 직접 세계를 여행하면서 찾은 훌륭한 숙소와 식당, 흥미로운 것들의 목록이 빼곡하다. 단 ‘훌륭함’의 방점이 미슐랭 스타나 성급이 아닌 ‘지속가능성’에 찍혀있다는 것이 한 가지 차이다.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된 제주의 친환경 스타트업 ‘푸른컵’은 다음 달부터 다회용컵(텀블러) 공유 서비스를 시작한다. 제주국제공항에서 텀블러를 빌려 여행 기간 사용한 뒤 공항 재방문 시 반납하는 것이다. 변화는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여행은 얼마든지 지속가능할 수 있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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