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국내 첫 기술특례상장 기업으로 증시에 입성한 헬릭스미스는 2019년 코스닥 시가총액 2위까지 오른 바이오기업이다. 당뇨병성 신경병증(DPN) 치료제 '엔젠시스'로 기대를 모았지만 내리막길로 이끈 것 역시 엔젠시스다.
엔젠시스 임상 3-1상이 실패한 후 무리한 유상증자, 고위험 사모펀드 투자 등으로 주가가 곤두박질쳤고 주주들과 갈등이 격화했다. 소액주주들은 의결권을 모아 경영진 전원 해임을 위한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요청했다.
오는 7월 14일 임시주총은 창업주인 김선영 대표가 경영권을 잃을 수도 있는 자리다. 앞서 지난 3월 정기주총에서 김 대표는 "내년까지 임상 3상을 성공하지 못하거나 주가가 10만 원을 넘지 못하면 보유 주식 전부를 회사에 출연하겠다"고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연구성과를 인정받는 서울대 교수였고, 한때 '바이오벤처 선구자'로 불렸던 김 대표는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된 걸까. 25일 오전 서울 마곡동 헬릭스미스 본사에서 만난 김 대표는 임상 실패와 재무적 위기, 주가 하락 등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아직 희망의 끈을 붙잡고 있었다. 그는 "주주들에게 죄송하다"면서 "가라앉는 배라고 선장이 뛰어내릴 수 있나. 엔젠시스 임상 성공으로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2019년 임상 3-1상의 유효성 입증 실패에 대해 어떻게 자평하나.
"'완벽한 실패'가 아니라 '미완의 성공'이라 본다. 3-1상은 데이터 오류 등 문제로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했지만, 이어 진행한 확대 임상에서는 엔젠시스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약효가 확인됐으니 앞선 결과를 교훈 삼아 임상 디자인을 개선하고 다음 임상에서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면 된다."
-엔젠시스는 주요 임상인 DPN 외에 여러 질병에 대한 임상이 진행 중인데 현재 진행 상황은.
"미국에서 3-2상 진행 중인 DPN은 이번 달 첫 투여환자의 관찰을 완료했고, 3-2b상에서 추가로 효능을 평가할 예정이다.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루게릭병)은 미국에서 임상 2상이 진행 중으로 3월 첫 환자 투약을 완료했다. 국내에서는 삼성서울병원에서 샤르코마리투스병(CMT)에 대한 임상 1·2a상이 진행 중이다. CMT는 손발 근육과 신경이 위축되는 병으로 '삼성가 유전병'으로도 알려져 있다."
-올해 1분기 영업손실 114억 원, 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반 토막나 3억8,000만 원에 불과했다. 이런 상태로 기업이 존속할 수 있나.
"엔젠시스가 실패하면 회사가 무너질 것이라 보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헬릭스미스는 엔젠시스 외에도 유망한 후보물질을 여러 개 보유하고 있고 경영을 이어갈 여러 기반도 갖춰져 있다."
-주주들이 제일 문제 삼는 게 '신뢰'다. 2년간 추가 유상증자는 없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후보물질을 키워 회사의 가치를 높여야 하는데 엔젠시스에 모든 자금과 자원이 집중돼 연구를 하지 못했다. 엔젠시스 개발이 최소 2, 3년은 걸리니까 이외의 사업을 하지 않으면 회사 가치 제고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봤다. 또 2019년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법차손)이 54% 발생해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수 있었다. 신뢰도 중요하지만 먼저 회사의 위험성을 최소화시키는 게 대표의 의무라 생각했다.
-그럼 왜 스스로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아 화를 자초했나.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개인 자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140억 원 대의 주식담보대출금 상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대출 연장도 안 되고 증권사로부터 반대매매 통보를 받았다. 유상증자를 따라가는 건 고사하고 이걸 갚는 게 급선무였다."
-주주들과의 신뢰는 어떻게 회복할 생각인가.
"여러 방법으로 엔젠시스가 성공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줄 것이다. 먼저 홈페이지에 실명제로 운영하는 주주게시판을 만들어 주주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하고 있다. 다음 주에는 주주들 20여 명을 모시고 본사에서 공개간담회를 진행한다. 연구 상황과 시설 기반들을 보여주기 위해 다음 달부터 매주 6명씩 모집해 연구소 견학도 진행한다."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주주를 고소한 배경은 어떻게 되나. 주주들의 집단 반발을 부를 수도 있는데 굳이 고소까지 해야 했던 이유가 있었나.
"주주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특정 목적을 가지고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고의성이 보이는 아이디를 고소한 것이다. '임상을 중단했다'는 등 근거 없는 내용으로 회사 주가를 떨어뜨리는 행위에 대해서다.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목적이었다. 고소건에 대해서는 강력한 입장을 가지고 끝까지 갈 예정이다."
-임시주총에서 해임될 수도 있다. 앞으로 계획은.
"시총 4조 원에 달했던 그때의 영예를 되돌리고 물러나야 한다. 결국 회사의 가치는 엔젠시스의 성공 여부에 달렸다. 보유주식 전량 출연을 내건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임상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헬릭스미스를 믿고 투자한 주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서울대 교수로 26년 강단에만 서다 보니 재무적 위기 상황에서 대응을 제대로 못 했다. 특히 내부적으로 문제를 정리하다가 소통의 시기를 놓친 게 큰 실수다. 소액주주 비상대책위원회가 나올 정도로 실망을 준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그저 죄송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