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여덟, 내 나이가 어때서 ‘출근하기 딱 좋은 나인데’

입력
2021.05.2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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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언니’ 부럽지 않은 ‘할머니들의 60대 전성기’

‘할머니’라 불리는 이들은 대개 자신을 ‘밥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밥하는 것’ 빼곤 달리 스스로를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다. 이들에게 남편이나 자식을 경유하지 않는 ‘자신만의 욕구’ 같은 건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실은 영영 사라져 버린 게 아니라, 너무 오래 방치되어 미처 발견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할머니들이 ‘출근’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세 번, 서너 살 꼬마 학생들 앞에서 오래된 전래동화를 들려주는 ‘이야기 선생님’으로 변신한다. 때로는 몸을 던져 주인을 구하는 강아지가, 또 때로는 늦은 밤길을 홀로 걷다 곤경에 빠지는 선비가 된다. 마스크 밖으로 눈만 겨우 내놓은 아이들의 유리구슬 같은 눈동자 앞에 서면 열연이 절로 펼쳐진다.



평생 아내와 며느리, 엄마로만 살아온 평범한 할머니들에게도, 한때는 ‘이다음에~’로 시작되는 거창한 꿈이 있었다. 그 꿈을 놓지 않으니, 일흔을 목전에 둔 60대에도 봄날이 찾아온다. 70대에 커리어 정상에 오른 배우 윤여정이 마냥 부럽지 않은 ‘6070 할머니의 전성기’다.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매년 수백 명의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는 ‘이야기 할머니’(문화체육관광부ᆞ한국국학진흥원 국책사업)들을 만나 이들의 ‘열연 표정’을 담았다. 동화 속 인물을 연기하는 동안 문득 표정이 뜨거워지고, 눈빛이 번쩍 빛나는 순간을 포착했다.


‘다시 출근하기 딱 좋은 나이’ 예순여덟, 고순옥



“아침 8시쯤이던가, 출근시간에 볼일이 있어 공덕역에 나간 적이 있어요. 개미 떼처럼 많은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데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전업주부로 사는 수십 년 동안 난 한 번도 출근 시간에 밖에 나와 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 무섭더라고. 나는 아직도 살 날이 많이 남았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6녀 1남 딸 부잣집의 ‘끼인 딸’ 셋째로 태어난 고순옥(68)씨는 어려서부터 ‘손 안 가는 자식’이었다. 고씨가 내민 소녀 시절 사진 속 그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칼 단발’에 빳빳하게 세운 교복 옷깃이 무너질까 외투조차 걸치지 않은 모습이다. “뭐 하나를 해도 ‘똑 떨어지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거든요.” 사진 속 야무진 여학생의 꿈은 다름 아닌 ‘경찰’. 학창 시절 내내 선도반장을 놓치지 않았던 소녀다운 꿈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국내에서 가장 잘나가는 식품기업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어딜 가나 손꼽히게 일 잘하는 ‘미스 고’로 통했다. 다들 아쉬워했다. “남자로 태어났어야 하는 팔자인데”하고.

“월급이 아주 넉넉했어요. 부모님 용돈 꼬박꼬박 챙기고도 전화기며 냉장고를 현금으로 턱턱 샀을 정도로. 내 삶의 모든 것을 내 뜻으로 결정하던 시절이었죠. 신나게 직장 다니다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니 회사 내 언니들이 다 사라지고 없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결혼한 여성이 회사에 다닐 수 없었거든요. 혼인신고와 동시에 사표를 쓰는 게 ‘암묵적 원칙’이었죠.”

여직원이라면 직급을 불문하고 누구나 ‘미스 아무개’라 불렸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엔 ‘미세스’도 ‘30대 여성’도 없었다. 감히 ‘더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을 수조차 없었다. 8년 다닌 회사를 퇴사하는 데에는 3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자식을 대학에 보내고 다시 용기 내어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그의 나이는 49세.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재취업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보니, 일찌감치 30대 후반에 자리를 박차고 나온 젊은 엄마들에게 밀려나기 일쑤였다. “어렵게 은행에 들어가서는 띠 동갑인 후배에게 컴퓨터도 열심히 배웠어요. 세상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늘 버거웠죠. ‘내가 이 나이에 뭘 더 하겠어’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 그러다가 만난 일이 ‘이야기 할머니’였다.


날이 갈수록 흐려지는 기억력에 매주 8분짜리 동화를 통째로 외워 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도, 지하철을 탈 때도,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를 할 때도 자신의 목소리로 낭독한 녹음 파일을 마르고 닳도록 듣는다. 친구들은 “얘, 치매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며 너스레를 떨지만, 다들 내심 부러워한다.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출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빨래 바구니에 양말이 뒤집힌 채로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으면 잔소리부터 나왔는데, 요즘은 ‘모르겠다, 알아서들 해라’ 해요. (웃음) 가족에게 덜 매몰되는 거 가장 좋아요. 누구에게도 미룰 수 없는 나만의 일이 있으니까.” 오래도록 남들에게 내어줬던 삶의 구심점을 자신에게로 옮겨오며 고씨에겐 ‘진짜 내 삶’이 시작됐다.


‘배우기 딱 좋은 나이’ 예순셋, 이순용

“기억나는 가장 오래된 과거를 떠올려 보면, 저는 소꿉놀이 때마다 한결같이 ‘선생님 역할’을 맡았어요. 가르치는 일이 좋아서 대학 다닐 땐 과외 선생을 많이 했죠. 야간학교에 다니며 영어도 가르쳤어요. 그렇게 바라던 꿈을 이뤄 중학교 교사가 됐는데, 5년도 못 채웠지 뭐예요.”

20대 시절 이순용(63)씨가 교편을 잡았던 시간은 고작 3년이었다. “여교사들은 결혼과 동시에 그만두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애들 중학교 입학할 무렵이 되니까, 후회가 되더라고요. 그때 일을 그만둔 게 미련이 남아서요. ” 다시 교사가 되고 싶어도, 일했던 시간보다 아이를 키우며 붕 떠버린 공백이 이미 배로 길었다. “어떻게든 일이 다시 하고 싶어서 애들 학교 보내놓고 작은 회사를 다녔죠. 퇴근하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 애들 저녁밥 차려주면서는 ‘이럴 때가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역시 애들이 우선인 법인데’ 고개를 가로젓다가도 ‘가르치는 일’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겠더라고요.”

그 시간 동안 ‘배우는 근육’을 열심히 단련했다. 다시 가르칠 기회가 온다면, 더 능숙하게 해내고 싶어서. 호기심에 녹이 슬지 않도록, 기회가 닿을 때마다 가리지 않고 배웠다. “남편 은퇴 전까지 ‘준비’한다고 생각했어요. 도서관이나 정부에서 무료로 여는 강좌가 있을 때마다 쉬지 않고 나갔죠. 오전에 일찍 한 번 다녀오고, 가족들 저녁 차려 준 다음 또 한번 다녀오고. 그렇게 공부하면서 때를 기다리니, 다시 학생들 앞에 설 기회가 보이더라고요.” 하루는 이야기 할머니로, 또 하루는 중학교 진로 지도교사로, 지역아동센터의 방문학습교사로 서울 곳곳의 유치원ᆞ초등학교ᆞ중학교를 누볐다. “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요. ‘엄만 아무도 못 말려, 평생 갱년기 같은 게 닥칠 겨를이 없을 거야.’”


2014년부터 8년째 이야기 할머니로 활동 중인 그는 지금까지 수천 명의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줬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만났던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다. “한번은 주인을 구하고 죽는 강아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얼굴이 말갛게 하얀 여자아이 얼굴이 점점 붉어지더니 맑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고요. 그런 아이들의 투명한 표정들이 마음에 오래오래 남아 이 일을 계속하게 돼요.”

가르치는 일이 좋아 밤마다 야학에서 교편을 잡던 젊은 시절의 에너지는 이제 그에게 없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지금 그는 더 많은 학생과 아이들에게 여전히 ‘선생님’으로 불린다. “교장으로 은퇴한 몇몇 동료들을 보면서 마냥 부러울 줄 알았는데, 그래도 아직까지 선생님 소리 듣는 건 저뿐이네요. 50대 넘어 다시 시작해 지금까지도 아이들 앞에 서고 있는 걸 보니까, 아마 ‘가르치는 일’이 제 소명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여생’이 아니라, ‘아직 안 온 전성기’

평생 주어로 호명되지 못했던 오늘날의 ‘할머니’들에게 앞으로의 생은 그저 여생(餘生), 즉 ‘남아 있는 생’이 아니다. ‘남았다’고 하기엔 하염없이 긴 시간이다. 이야기 할머니가 되어 다시 출근하는 시간이 이들에겐 ‘남은 시간의 공백을 메꾸는 일’이 아닌 ‘오랜 시간 잃어버렸던 주어를 되찾아오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들에게 ‘지금 내 나이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고순옥씨에게 ‘내 나이 예순여덟’은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다. “이야기 할머니 하면서 연기에도 관심이 생겨 뮤지컬을 배우러 갔는데요. 무지 놀랐어요. 거기 70~80대 언니들이 많더라고요. 저는 한참 멀었다 싶었죠. ‘맘마미아’를 공연하는데 제가 제일 젊어서 딸 역할을 맡았어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저 진짜 아직 젊은 거더라고요!”

이순용씨에게 ‘예순셋’은 ‘전성기를 준비하는 나이’다. “일흔네 살에 오스카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씨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 전성기는 아직 안 왔을 수도 있겠다. 여전히 ‘오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요. 최근엔 ‘버킷리스트’를 다시 썼어요. 아직 배우고 싶은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는 걸 알았죠.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거요? 토익시험이랑, 일본어능력시험 보기!”

박지윤 기자
서동주 인턴기자
이누리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