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만성적자, 무임승차 탓 아냐... 요금 현실화 필요"

입력
2021.05.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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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
"방만 경영과 직무유기, 책임 떠넘기기 심각"
"철도·역세권 연계 개발로 운영비 충당해야"


“서울교통공사의 만성적자는 정치인의 직무유기, 공사의 방만 경영, 중앙정부의 책임 떠넘기기가 뒤엉킨 문제입니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운임요금 현실화부터 당장 시작해야 합니다.”

24일 경기 수원 아주대에서 만난 유정훈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공사의 재정상황은 파산 직전의 상태”라며 “응급처방과 함께 경영실적 개선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지하철 1~8호선과 9호선 2‧3단계 구간을 운영하는 공사는 오는 10월이면 운영자금이 부족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1인당 수송비용의 60% 정도인 요금, 적정 여부 2년마다 조정해야

대한교통학회 부회장과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 위원인 그가 단기처방으로 운임요금 인상 카드를 꺼내든 건 공사의 1인당 수송비용(2,061원)에 비해 요금(1,250원)이 크게 낮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시 대중교통 기본조례(2018년 제정)에 따라 시장은 대중교통 요금의 적정 여부를 2년마다 분석‧조정해야 하지만 사실상 손 놓고 있었다. 운영비용 등 재무성 평가 없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시켜 놓고 운영비 부담은 알아서 하라고 떠민 중앙정부도 문제를 키운 원인”라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지하철 요금 인상은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요금을 200~400원 올리면 공사는 요금수입으로 운영비를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어요. 기존에 서울시가 공사에 지원하는 손실보전금은 재난지원금처럼 지하철을 많이 타는 이들에게 환급하면 시민들의 교통비 부담도 덜 수 있습니다.” 이후엔 “공무원 임금이나 최저임금처럼 물가상승률과 연동해 지하철 요금이 결정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서울지하철 요금은 2015년 현 수준으로 인상된 뒤 동결 상태다.

고령자 무임승차, 사업 초기부터 계획된 것

그는 만성적자의 원인으로 공사가 지목한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에 대해선 적극 반박했다. 유 교수는 “사업 초기부터 고령자에게 지하철 요금을 받지 않는 걸 상정한 채 운영계획을 세워놓고선 마치 원래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해 적자가 난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며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는 비용편익이 1.4로, 100원을 들여 교통사고 감소‧의료비 절감‧우울증 예방 등 140원의 효과를 얻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교통복지”라고 지적했다. 다만 고령화 속도가 가파른 만큼 그는 “65세 이상 고령자도 일정 부분 요금을 내게 하는 등 중앙정부가 복지 차원에서 고령자에게 차등 보조하는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장기 개선책으론 철도 선진국인 홍콩이나 일본에서 하는 ‘철도·역세권 연계 개발’을 참고사례로 꼽았다. 택지지구를 조성하거나 신규 노선을 놓을 때 땅값이 싼 사업 초기부터 철도 역사와 그 주변 토지를 사들인 뒤 역세권 부동산 개발에서 나오는 임대수익으로 공사의 운영비를 충당하자는 것이다. 유 교수는 “지금은 택지지구가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춘 뒤 철도를 놓으려 하니 땅값이 비싸 철도‧역세권 연계 개발을 할 수가 없다”며 “철도·역세권 연계 개발은 철도 요금을 계속 인상하지 않으면서 안정적인 공사 운영까지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재원조달은 물론, 핵심 도심인 역세권 공간의 공공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강도 높은 구조개혁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하철 정비만 해도 경쟁 입찰을 통해 비용절감이 가능하지만 지금까진 경쟁자가 없는 공사가 도맡다 보니 고비용 구조가 유지돼 왔다”며 “방만 경영의 뿌리인 독과점 체계를 개편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태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