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계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사회단체 연합체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국민동의청원 운동을 25일부터 전개하는 가운데 최초 청원자 99인에 심종혁 서강대 총장 신부가 이름을 올렸다. 천주교인권위원회도 지난주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천주교 일각에서 현재 국회에 계류된 법안에 포함된 성소수자 관련 조항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제정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다.
24일 천주교계에 따르면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는 최근 심 신부를 만나서 청원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했다. 미국에서 성소수자 사목에 힘쓴 제임스 마틴 신부의 저서 ‘다리 놓기’를 심 신부가 번역한 것이 계기였다. 이달 출판된 ‘다리 놓기’는 성소수자와 천주교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믿음을 키워 나가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종교 서적이다. 차제연 관계자는 “천주교계의 우려와 달리 법안이 동성혼을 합법화하는 내용이 아니라고 설명을 드렸고 본인이 이름을 99인에 올리는 것에 허락해주셨다”라고 설명했다.
교계(성직자) 제도 바깥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법안 제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천주교계 인권운동단체로 1988년부터 △군 의문사 △KAL858기 사고 진상규명 △사형제 폐지 등 다양한 사회문제에 관여해온 천주교인권위원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 대한성공회 나눔의집협의회·정의평화사제단과 함께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차별과 혐오를 반대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한국 개신교계와 천주교의 보수적 집단이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앞장서서 반대해왔다면서 “이들이 모든 그리스도인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차별이 아닌 평등을, 혐오가 아닌 사랑을 복음의 진정한 가치로 믿고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지난해 7월 22일 80여 단체와 1천여 개인이 참여한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 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성명'을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성명에는 기독교인이라면 차별금지법 제정을 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겼다. 천주교인권위원회 등은 “우리가 따르는 예수님의 복음은 우리가 ‘옳다’고 믿는 도덕이 누군가의 생명과 인간다운 삶을 위협할 때 도덕을 넘어 사랑을 선택하게 한다”면서 “예수님이 다가가 이웃이자 친구가 되어주셨던 세리나 음행 중에 잡혀 온 여인, 사마리아인, 악성피부병 환자와 신체 장애인 등은 당시 유대교의 도덕적 기준에서는 ‘죄인’으로 낙인찍혔던 이들”이었다고 주장했다.
▦차별금지법은?
차별금지법은 다양한 정체성을 이유로 한 사회적 차별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이다. 2007년부터 5차례 이상 국회에 발의됐다. 장혜영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법안은 가장 포괄적으로 차별을 정의했다. 성별, 장애는 물론이고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등 23가지 사유를 이유로 사람을 차별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나이부터 종교, 사상, 가족 형태, 병력, 학력까지 다양한 사유를 포함하고 있다. 23가지 사유를 이유로 고용은 물론, 재화와 행정서비스의 이용과 교육기관의 교육 등에서 특정인을 분리하거나 배제할 경우, 인권위가 시정을 권고할 수 있다. 시정권고를 받은 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권고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3,000만 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시정권고에 대한 이의신청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