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1인 창작자, 즉 크리에이터다. 다양한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나 사회관계형서비스(SNS)에 공개해 인기를 얻고 돈도 버는 크리에이터는 아이들에게 연예인이나 다름없다.
크리에이터가 인기를 끌며 등장한 것이 이들을 관리하는 다중채널 네트워크(MCN) 다. MCN은 연예인을 관리하는 연예기획사처럼 크리에이터들을 관리하며 다양한 사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김은하 대표가 이끄는 신생기업(스타트업) 아이스크리에이티브는 여러 MCN 중에서도 전자상거래를 결합한 독특한 사업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곳이다. 그래서 김 대표는 아이스크리에이티브를 기존 MCN을 넘어선 '비욘드 MCN'이라고 부른다. 서울 서빙고로에 위치한 아이스크리에이티브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나 비욘드 MCN에 대해 들어봤다.
김 대표는 "기존 MCN이 크리에이터와 시청자들이 만나는 B2C였다면 비욘드 MCN은 기업이 참여하는 B2B 사업까지 확장된 개념"이라고 표현했다. "기존 MCN은 크리에이터들이 만든 영상에 광고를 붙여 광고 수익을 나누죠. 그런데 비욘드 MCN은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의 인기와 지명도, 즉 휴먼 브랜드를 바탕으로 직접 제품을 판매하며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요."
단순히 영상 제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유통까지 이어진다. 이를 위해 김 대표는 지난해 9월 크리에이터들이 영상으로 소개한 제품을 판매하는 '커밋 스토어'를 개장했다. "커밋 스토어는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는 직거래 방식(D2C)의 온라인 상점이에요."
시작은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개최한 커밋 페스티벌이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었던 커밋 페스티벌은 일종의 미용 박람회다. "소비자들은 화장품 등 미용 상품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어해요. 인터넷에서는 이런 경험을 제공하기 힘들어서 제품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행사를 기획했죠."
다양한 화장품 업체들이 행사에 참여했고 제품 사용방법을 크리에이터가 관람객들에게 알려주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여러 식음료 업체들까지 참가해 행사장에서 놀고 먹으며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었어요. 2018년 첫 행사의 반응이 너무 좋아서 이듬해 규모를 두 배로 키웠어요. 지난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행사를 쉬었고 올해는 9월에 인터넷에서 가상 박람회인 랜선 페스티벌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행사의 열기와 인기를 온라인으로 고스란히 가져온 것이 커밋 스토어다. 커밋 스토어는 함께 일하는 크리에이터들이 20, 30대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제품을 선택해 영상으로 소개하면 이를 온라인에서 판매한다. 커밋 스토어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은 다른 곳에서 살 수 없는 독점 상품들이어서 올라오는 즉시 바로 품절된다. 때로는 크리에이터들이 커밋 스토어 안에서 인터넷 생방송으로 직접 제품을 판매하는 라이브 커머스도 진행한다.
김 대표는 커밋 스토어의 인기 비결을 회사의 제품 기획력과 크리에이터들의 창작 능력(스토리텔링)에서 찾는다. "소비자들은 익숙한 제품을 구매해요. 커밋 스토어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은 크리에이터들의 영상을 통해 사용법을 보고 들었기 때문에 신제품이어도 익숙하다고 느끼죠."
그렇다 보니 요즘은 자체 상품(PB)을 직접 기획한다. 이때 크리에이터들이 제품을 발굴하는 상품 기획자(MD) 역할을 한다. 여기에 감독 역할을 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가 참여해 크리에이터들의 기획을 돕는다. "크리에이터 못지않게 CD가 핵심이에요. CD는 방송사의 PD 같은 역할이에요. 전문적이고 다양한 경험을 가진 CD들이 프로덕션팀에 소속돼 있어요."
아이스크리에이티브는 100만 유튜브 구독자를 갖고 있는 윤쨔미, 다영 등 45명의 전속 크리에이터들과 계약을 맺고 있다. "전속 외에도 프리랜서 크리에이터 100팀이 꾸준히 영상 제작과 상품 기획에 참여해요." 이런 방식으로 함께 일하는 가장 유명한 크리에이터는 지상파TV 방송에도 출연한 이사배다. "이사배씨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서 사업 제휴를 했어요. 이사배씨가 따로 회사를 차릴 때도 자문을 해줬죠. 지분 투자를 하지 않았지만 화장품 관련 영상 제작이나 행사 등 독점 사업을 많이 하고 있어요."
이 밖에 미용 만화가로 유튜브에 영상을 제작해 올리는 크리에이터 된다는 아이스크리에이티브와 손잡고 '도앤다스'라는 상표를 만들어 생활잡화 등을 커밋 스토어에서 팔고 있다. 크리에이터 새벽은 화장품 상표 '주인공'을, 다영은 화장품 상표 '데이퍼센트'를 아이스크리에이티브와 함께 개발했다.
제품 판매 수익은 크리에이터와 나누는데 역할과 유통 방식에 따라 배분율이 다르다. 기존 유튜브 영상에 붙은 광고 수익에 대한 회사와 크리에이터의 배분율도 5 대 5부터 7 대 3까지 제각각이다.
다만 MCN 분야의 경쟁이 치열한 점은 걸림돌이다. 그러나 김 대표는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선의의 경쟁이 치열한 것은 좋아요. 전문 인력을 계속 발굴할 수 있죠. 중요한 것은 건강한 콘텐츠를 꾸준히 기획하는 것이에요. 그러려면 휴먼 브랜드 관리가 정말 중요해요.”
휴먼 브랜드 관리란 크리에이터들이 갖고 있는 인기와 지명도를 지적재산권(IP)처럼 관리해 주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틱톡 등 크리에이터들의 창작물을 보여줄 수 있는 플랫폼에 맞춰 영상물을 기민하게 기획하는 능력으로 차별화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크리에이터들이 너무 소모되지 않도록 관리해 주는 것이 중요하죠.”
그래서 김 대표는 크리에이터들의 평판 관리를 각별하게 신경 쓴다. 이를 위해 크리에이터들의 휴먼 브랜드를 관리하는 조직을 최근 신설하고 광고대행사 엘베스트 출신의 윤명진씨를 책임자로 영입했다. "그동안 평판 관리를 잘해서 아직까지 이탈한 크리에이터들은 없어요. 크리에이터들의 고충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경험 많은 사람들 위주로 구성해 놓았어요. 그래서 여기 만족한 크리에이터들이 다른 크리에이터들을 소개하는 경우도 많아요."
코로나19 이후 연예인들이 유튜브 영상을 만들며 크리에이터 영역으로 넘어오는 것도 위협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를 또 다른 기회로 본다. "유튜브 영역으로 넘어오는 연예인들을 영입하면 돼요. 지금은 힘든 시기여서 다들 상생 방법을 찾고 있거든요. 연예인들을 영입하면 MCN 산업이 더 주목을 받을 겁니다." 실제로 김 대표는 걸그룹 소녀시대 출신의 제시카, 모델 변정수 등 연예인들과 공동 영상 채널을 운영하는 등 기획 사업을 종종 진행한다.
원래 김 대표는 MCN 분야에 오랜 경험을 갖고 있다. 1994년 한남대 응용미술학과에 입학해 광고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3년 정도 입시 미술학원을 운영했다. 이후 학원을 정리하고 대학원을 다니던 중 2003년 네오위즈에 입사하며 새로운 사업에 눈을 떴다. "네오위즈가 운영하던 커뮤니티 서비스 세이클럽의 상품팀장을 하면서 아바타와 아이템 상품 등을 기획했어요. 실제 상품이 없는데도 하루에 매출이 몇 억 원씩 올라가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죠."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2007년 온미디어로 옮겨서 온스타일 아이닷컴에서 온라인 사업을 했다. 거기서 그는 또다시 신세계를 봤다. "2012년에 1세대 크리에이터인 씬님, 로즈하 등 10팀과 영상 등을 기획하면서 영상 콘텐츠라는 새로운 세상에 푹 빠졌죠."
김 대표는 온미디어가 CJ와 합병해 탄생한 CJ E&M에서 MCN 사업을 하게 됐다. MCN 사업을 본격적으로 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다양한 의견을 냈는데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워킹 맘의 고충도 창업에 한몫했다. “아이 양육을 위해 유연 근무가 필요했는데 그렇게 할 수 없어서 2017년 퇴사하고 창업을 했어요.”
김 대표의 경험 덕분에 아이스크리에이티브는 워킹 맘이 일하기 좋은 회사가 됐다.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출퇴근 시간을 정하지 않았어요. 직원들이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출퇴근하고 재택 근무도 가능해요. 월요병에 시달리지 않도록 일부러 월요 회의를 없애고 월요일에는 오후 1시 이후에 출근하도록 했어요. 그래서 일요일 저녁에 부담 없이 맥주 한 잔 할 수 있어요. 금요일에는 1시간 일찍 퇴근할 수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 경영은 어려움이 많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조직 문화를 갖추는 것이 힘들어요. 직원들과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것은 좋은데 의사 결정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어요. 또 리더들과 직원들의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 온도 차이를 줄이려는 노력도 필요하고요. 그래서 큰 회사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해본 경험이 있는 대기업 출신들을 영입하려고 해요."
앞으로 김 대표는 미용과 패션 분야에 집중한 사업을 다른 분야로 확대할 계획이다. "미용과 패션 분야에 집중한 것은 그 분야에 개인적 경험이 많아 잘 맞았기 때문이에요. 또 소비자와 제품을 연결하기 쉬운 산업이고 디지털과 궁합도 좋아서 더 커질 겁니다. 앞으로 음식, 집안 장식, 생활잡화, 목공 등으로 분야를 넓히려고 해요. 이달 말에 커밋 스토어를 새로 개편해 상품 종류를 늘릴 예정입니다."
이와 관련해 추가 투자도 유치할 계획이다. "2019년에 샌드박스네트워크에서 60억 원을 투자받았어요. 사업 확대를 위해서 추가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에요."
주요 대상은 20, 30대 여성을 계속 유지할 방침이다. "20, 30대 여성들의 경제력이 상승했고 패션과 미용 분야에서는 이들이 시장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고 있어요."
다양한 브랜드를 커밋 스토어에 영입해 매출을 끌어올리는 것도 올해 중요한 목표다. "매출은 지난해 100억 원이었고 올해 150억 원을 겨냥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