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에 참석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당근과 채찍'을 양손에 쥐고 있었다. 청와대 의견을 다수 반영해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인정을 공식화한 것은 북한에서도 주목할 만한 유인책이다. 다만 대북 적대시 정책을 쉽게 거두지 않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은 협상장 복귀 여부를 둘러싼 김 위원장의 고민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에서 "한미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진전하면서 긴장을 줄이기 위한 실용적 조치를 취하기 위해 북한과 외교적으로 관여할 의지를 공유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 남북·북미 간 약속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구축 달성에 필수라는 우리의 공통된 신념을 재확인한다"고 명시했다. 김 위원장이 서명한 기존 합의들을 '재협상 출발선'으로 인정해 협상 복귀를 위한 명분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남북 정상 간 '판문점 선언'을 공동성명에 명시한 것도 눈에 띈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이미 반영돼 있는 내용이지만, 향후 비핵화 견인 과정에서 남북대화를 재개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경험이 많은 성 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대행을 대북특별대표로 '깜짝' 임명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4개월 만에, 싱가포르 선언 과정에 참여한 김 대행을 북핵 협상 수석대표로 임명한 것은 미국의 협상 재개 의지를 구체적으로 입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도 반색했다. 22일 3박 5일간 방미를 정리하면서 미국 측의 '깜짝 선물'로 소개한 것이다.
향후 양국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행보가 결실을 보기 위해선 북한의 호응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양국 정상의 공동성명에는 대북 유화 메시지뿐 아니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의 완전한 이행과 북한이 극도로 민감해하는 북한 인권 개선에 대한 내용이 포함됐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선(先) 폐기를 대화의 조건으로 내세운 북한의 입장과 충돌하는 지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차별화도 분명히 했다.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어떠한 진척이 보이지 않는 한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중요시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와 같은 북미 간 고위급 접촉 등 '이벤트 외교'에 선을 그었다.
북한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손짓을 뿌리칠 경우 '싱가포르 공동성명 존중'을 약속한 보기 드문 기회가 아쉽고, 호응한다고 해도 대북 제재 완화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곧바로 대응하기보다 상황을 주시하면서 비핵화 조치와 대북 제재 해제를 패키지로 협상하는 제안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나 미국의 만족스러운 제안이 없다면 '강 대 강' 대결로 급선회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