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닫지는 않았다. 다만 적절한 준비 이후에만 가능하다.”
21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미국 행정부 고위 당국자가 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관련 태도는 이렇게 요약된다. 정상끼리 덜컥 만날 수는 없고 실무 준비가 먼저 충분히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처럼 계속 대화를 거부할지 일단 자기들 이야기를 들어 보기라도 할지 선택하는 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몫이라는 것이다. 교착 중인 북미 비핵화 협상이 쉽게 재개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 고위 당국자는 이날 한미 정상회담 뒤 언론 대상 전화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어떤 약속을 하면 정상회담을 할 걸로 보느냐’는 질문에 “바이든 대통령이 (정상회담의) 문을 닫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현재로서는 정상회담 관련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에 따르면 공은 북한에 넘어가 있다. 현재 미국은 새 대북 정책 검토를 완료한 뒤 이를 설명하고 전달하는 자리를 만들자고 북한에 제안한 뒤 회신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인센티브(유인책)도 공식화했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자기들한테 한 약속을 바이든 정부가 계승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지금껏 북한의 걱정거리였다. 그러나 이번 한미 정상회담 공동 성명에 2018년 판문점 선언 및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명시하고 양국 공동 목표로 일방적인 ‘북한 비핵화’ 대신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건 과거 대북 정책과 완전히 단절하지 않겠다는 바이든 정부의 의지 피력이다.
문제는 미국 측 요구다. 정상회담은 아주 신중하고 효과적으로 준비돼야 하는 만큼 실질적이고 생산적일 수 있도록 실무진이 먼저 북한의 카운터파트와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 당국자 얘기다. 실무 단계부터 합의를 쌓아 가는 상향식 접근으로 실질적 성과가 담보되지 않으면 정상회담은 열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당국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회담 가능성을 닫지 않았지만 오직 적절한 준비를 한 뒤에야 회담이 가능하다는 게 그의 요지라고 거듭 강조했다.
긍정적인 부분은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버락 오바마 정부와 달리 바이든 정부의 경우 대북 관여(대화) 의지가 강하다는 사실이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성 김 국무부 동아시아ㆍ태평양 담당 차관보 대행을 대북특별대표로 임명한 게 분명한 증거다. 전문성과 대북 경험이 풍부한 그가 실무 회담을 실용적으로 이끌 적임자라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다는 게 외교가 중론이다. 이 당국자는 김 대표 임명에 대해 “우리가 북한에 관여할 때 (한국과) 협력하겠다는 희망과 약속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이 당국자는 미국ㆍ일본ㆍ호주ㆍ인도 등 인도ㆍ태평양 4개국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에 한국이 참여하는 문제와 관련, “쿼드에 참여시키기 위해 한국에 가해지는 어떤 압력도 없고 당장 쿼드를 확대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쿼드 참여국이 다른 나라와 특정 이슈 관련 협력을 하는 일은 가능하다면서도 “자국이 원하는 바에 대한 결정을 한국이 스스로 내릴 필요가 있음을 인정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