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월요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미시시피주의 낙태법에 대해 위헌심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뉴욕주의 총기규제법에 대해 위헌심사를 하기로 결정한 지 한 달여 만에 또다시 미국의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이 긴장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9명의 대법관 중 3명을 임명했다. 이로 인해 연방대법원은 보수적인 색채로 완전히 돌아섰다고 평가된다. 낙태를 더 넓은 범위로 금지시키는 미시시피주의 법이 합헌 판정을 받을 확률이 높아졌으며, 총기 소지에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뉴욕주의 법은 위헌 판정을 받게 생겼다. 둘 다 정치적 또는 이념적 판단을 요하는 사안들이며, 연방대법원의 결정이 향후 50개 주 모두에 똑같이 적용될 예정이라 단순한 법리 다툼을 넘어서는 정치적 문제이다.
그렇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중요한 정책의 내용을 결정하는 정치적 행위자이다. 단순히 법의 심판자나 객관적 중재자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법전 중심의 대륙법 체계를 따르는 한국과 달리, 판례 중심의 보통법 체계를 따르는 제도 때문이다. 개별 사건들에 대한 판사의 판결과 법 해석이 문서화된 법률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 따라서 가장 상위 법원이면서 헌법을 해석할 수 있는 권한도 가진 연방대법원은 실질적으로 법을 만드는 역할도 한다.
더 중요한 이유는 대법관들이 지금까지 정치적 이슈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드러내는 데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남북전쟁이 끝난 1860년대에 흑인차별을 금지하고 투표권을 보장하도록 헌법까지 개정했지만, 연방대법원은 이후 100년동안 흑인차별을 정당화하는 판결을 해왔다. 1883년에는 흑인의 투표권에 제한을 두지 못하게 한 연방법이 위헌이라고 했으며, 1896년에는 흑인에게도 공간이 주어진다면 공공장소에서 백인과 흑인을 분리시키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는 어이없는 판결도 했다. 1954년 진보 성향의 대법원장이 들어서고 나서야 연방정부가 주정부의 인종차별을 시정할 수 있다고 명시했으며, 1967년에 비로소 인종이 다른 사람들끼리의 결혼을 금지시키는 법이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특정 정당이 자신들과 정치적 의견을 같이하는 대법관을 추가로 임명하여 대법원 전체의 이념적 균형을 한쪽으로 기울게 만드는, 소위 ‘법원 재구성(court packing)’이 드물지 않았다. 건국 이후 100년 동안 총 7번이나 대법관의 숫자를 바꿨고, 현재의 9명 정원은 1869년에 생긴 것이다. 1930년대 뉴딜정책에 대해 연방대법원이 계속 위헌이라고 판결하자 루스벨트 대통령은 5명의 대법관을 추가로 임명하려 했다가 민주당 내부의 반대로 실패했던 사례도 있다.
이와 유사한 일들은 사실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2016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공석인 대법관 자리에 갈랜드 판사를 지명했으나, 대선 결과에 따라 임명해야 한다는 공화당의 방해로 1년간 대치하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그런데 2020년 선거 몇 주 전 긴즈버그 대법관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자리는 공화당이 일사천리로 채워버려 큰 논란이 일었다. 아니나 다를까, 보수 성향으로 돌아선 연방대법원은 진보와 보수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낙태와 총기규제에 대해 조만간 판결을 내리려 하고 있다.
이에 민주당과 진보 진영은 연방대법원이 미국 시민들의 눈높이와 멀어져 버렸다며 대법관 수를 늘여서라도 이념적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4월 9일 바이든 대통령은 이 문제를 검토할 위원회를 만들었고, 4월 15일에는 하원 민주당 의원들이 대법관을 4명 더 추가하는 법안도 발의했다. 당분간 연방대법원을 둘러싼 정파적 논란이 끊이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