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약국 등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아 판매·투약한 10대 청소년 수십 명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주로 경남·부산지역 청소년들로, 한 청소년이 수도권 지인에게 마약 투약 방법을 배워 와 지역 청소년들에게 전파한 것으로 드러났다.
명의 도용이나 길에 떨어진 주민등록증 등을 이용해 병원과 약국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손쉽게 대량 구매했고, 다른 10대들에게 열 배 넘는 돈을 받고 유통했다.
김대규 경남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범죄수사계장은 20일 TBS 명랑시사, 이승원입니다에 출연해 "지난해 말부터 '학생 네다섯 명이 공원이나 상가 공중화장실에 모여 마약을 하는 것 같다'는 관내 112나 무기명 등으로 신고가 들어와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처음에는 학생들이라고 해 긴가민가해 은밀하게 내사를 진행했는데, 다른 지역 경찰에서도 저희 관내 학생들을 상대로 유사한 사건을 조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사안이 중한 청소년 한 명은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같은 혐의로 청소년 41명을 검거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사용한 마약성 진통제는 아편 계열의 강력한 마약 중 하나인 펜타닐 패치로, 말기 암 환자처럼 장시간 지속적인 통증을 느끼는 환자들이 처방받는다. 중독 증상이 심하며 용량 이상 투약하면 호흡마비 등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병원 처방이 있어야 구매할 수 있는 약이지만, 이들은 쉽게 패치를 구매했다. '허리가 아프다', '디스크 수술을 할 예정이다' 등 말 몇 마디만 하면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을 수 있었다. 처방전을 받아오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여러 약국을 다니며 펜타닐 패치를 모았다. 많게는 1인당 57회까지 패치를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계장은 "병원에서 주민등록번호만 간단하게 적으면 본인 확인 없이 처방이 가능하다"며 "이번 같은 경우 청소년들이 본인 명의나 지인들 명의를 도용하고, 심지어는 길에 떨어진 주민등록증을 이용해 처방받은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한 청소년이 수도권 지인에게 마약 투약 방법을 배운 뒤 지역에 전파한 게 발단이 됐다.
김 계장은 "이걸 접하게 된 방법은 한 청소년이 수도권 지인한테 펜타닐 취득 방법, 투약 방법을 배워 와 경남 지역 지인들과 친구들한테 알리며 확산됐다"며 "처음에는 청소년들이 기분이 좋아진다고 권유해 호기심으로 접한 경우가 많았다. 이후에는 금단·중독 증상이 나타났고, 이로 인해 청소년들이 많이 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들 중 일부는 학교에서 투약하기도 했다. 김 계장은 "일부 학생이 학교에서 투약한 것을 학교 선생님이 확인하고 저희한테 수사 의뢰를 했다"며 "수사 의뢰를 받고 보니 그 학생들이 이미 저희 수사 대상에 오른 학생들이었다"고 말했다.
김 계장은 마약사범들의 연령대가 점차 어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마약을 접하는 연령이 많이 어려지고 있다"며 "(1월에 검거했던 '마약왕' 국내 공급책인 '바티칸킹덤'의) 텔레그램 조직 검거를 한 것도 분석해 보니 96명 중 90%가 20대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래전부터 마약에 손을 대왔기 때문에 청소년 시절 이미 시작하지 않았나 판단한다"며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정보를 쉽게 접하고 거래도 쉽게 할 수 있고 마약류 유통법도 자세히 알 수 있다"고 했다.
김 계장은 해외 마약 총책인 '마약왕'이 제2의 바티칸킹덤을 통해 국내에 마약을 공급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판매 조직을 추적해 검거해도 또 다른 조직이 인수해 공급을 이어간다. 지금(바티칸킹덤 같은) 또 다른 조직이 텔레그램에서 활동하는 걸 확인하고 있다"며 "(해외 마약 총책은) 한 조직이 경찰에 검거되면 소모품처럼 바로 잘라버리고 다른 조직을 이용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