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각)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비롯한 미 하원 지도부와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한미관계 △한반도 평화 △반도체·백신 협력 등의 현안을 논의했다. 최근 빈발하고 있는 미국 내 아시아계를 겨냥한 혐오 범죄에 대해선 우려를 표명하고 우리 동포들의 안전에 대한 미 의회의 관심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0여년간 이어온 한미동맹이 역내 평화와 번역의 핵심 축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하면서 운을 뗐다. 특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관련해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과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해 반드시 실현해야 하는 과제"라며 "한미가 함께 이를 실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에 대한 환영의 뜻을 표하고 "(새 대북정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북미 대화 조기 재개가 관건"이라며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다양한 대북 관여 노력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 한국이 양국 사이에서 특정 편에 설 수 없는 상황임을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안보의 근간이고, 중국은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자 한반도 문제 관련 중요한 협력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중관계의 안정적 발전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문제"라며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미중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한미일 3각 공조 강화를 위해 바이든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한일관계 개선에 대해선 "일본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이웃으로 우리 정부는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사 문제는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가면서 기후변화, 코로나19 등 실질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21일(현지시각) 오후 열릴 한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인 반도체·전기차 배터리 공급망과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언급도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한국 기업들의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생산 능력이 글로벌 공급망 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며 "첨단 분야에서의 양국간 공급망 협력이 충실히 이행될 수 있도록 우리 정부도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제사회에 백신을 지원하기로 한 미국 정부의 최근 결정을 높이 평가하면서 "한미 양국이 백신 수급을 비롯한 보건안보 정책을 보다 긴밀하게 조율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한미의 강한 의지를 거론하며 "미국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한국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과 지향하는 바가 같아서 양국 간 협력의 여지가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취임 즉시 파리기후협약 재가입을 천명하고 취임 100일이 되기 전에 기후정상회의를 개최한 바이든 대통령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월 한국계 4명을 포함해 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애틀랜타 총격 사건을 언급한 것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최근 미국에서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빈발하고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하면서 "미국 내 우리 동포들의 안전과 관련해 미 의회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이를 계기로 국제사회에 인종이나 지역에 따른 차별 및 혐오를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펠로시 의장에게도 '코로나19 혐오범죄법' 입법이 초당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을 언급하고 "혐오와 폭력에 침묵하지 않고 단호히 맞서는 미 의회의 노력을 우리 정부도 적극 성원할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