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8일 0시 비상계엄령 확대 직전 공수부대를 피해 이화여대 교정을 함께 탈출했던 20대 남성을 찾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41주년인 18일 한 신문에 '한 남자의 안부를 묻고, 찾습니다'란 제목의 광고가 실렸다. 5·18 41주년을 맞아 실린 광고인데다, 요즘에는 신문에 잘 내지 않는 사람 찾는 광고란 점에서 많은 누리꾼의 주목을 받았다.
자신을 60대 중반 중노인이라고 소개한 A씨는 41년 전 삼엄했던 5·18 당시 군에 잡히지 않고자 함께 필사적으로 도주했던 한 남성을 찾는다는 내용의 광고를 냈다. 당시 20대였던 남성의 인상착의만 기억할 뿐, 그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누리꾼들은 A씨의 사연에 "가슴이 먹먹하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광고를 퍼나르며 공감을 표시했다.
A씨가 낸 광고에 따르면 A씨와 당시 20대 대학생이었던 B씨는 41년 전인 1980년 5월 16, 17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전국대학 총학생회장단 회의에 참석했다.
그러나 비상계엄령 확대를 발표한 이후인 17일 오후 9시쯤 공수부대가 학생들을 체포하기 위해 회의장에 난입했다. 두 사람은 당시 초면으로 상대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지만, 공수부대에 잡히지 않기 위해 함께 도망쳤다.
두 사람은 이날 오후 11시 50분쯤 한 건물 지하 보일러실 귀퉁이에 몸을 숨겼고, 18일 0시 직전에 가까스로 학교를 빠져나갔다. 현재 이 건물 자리에는 수영장이 생겼다. A씨는 "좁고 추운 공간에 갇혀 지독한 공포에 시달렸다"면서 "B씨와 천운으로 탈출한 경험을 공유한 사이"라며 당시 기억을 전했다.
이화여대를 빠져나온 두 사람은 신촌역 앞 광장에서 헤어졌다. A씨는 90도 우측으로 꺾어 도주했지만, B씨가 어느 쪽으로 갔는지 A씨는 모른다고 했다.
A씨는 "그날로부터 41년째인 5월 18일 우리 둘은 60대 중반 중노인이 됐다"며 "난 아직도 그대의 이름, 출신 대학도 모르고 심지어 얼굴조차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다만 41년 전 당시 20대였던 남성의 모습은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키가 약 175~180㎝ 정도로, 마른 체형이었던 것만 떠오른다"며 "내가 당신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라고 강조했다. A씨는 B씨가 이 광고를 보게 되면 연락을 달라며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올렸다.
누리꾼들은 온라인에 이 광고를 퍼 나르며 A씨를 응원했다. 누리꾼들은 "광고를 보고 먹먹해졌다. 그분을 꼭 찾으셨으면 좋겠다", "찾으시길 바란다. 두 분이 만나 꼭 안부도 물어보시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누리꾼은 자신의 블로그에 해당 신문 광고를 소개하며 "이분은 이름도 모르는 사내의 안부를 41년이 지나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확인하려고 한다. 그때 두 사람의 6시간은 어떤 의미였을까"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