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속 유야호(유재석)의 땋은 머리 밑단에서 흔들리는 고운 머리끈. 국가무형문화재 제22호인 매듭장 김혜순(77)씨가 만든 우리 전통 매듭이다. "처음에는 태극선 부채 끝에 달린 매듭을 떼다 머리에 달았더라고요. 매듭 모양새가 제대로 된 전통이랄 수 없었죠. 남자니까 선추(부채 끝에 늘어뜨리는 장식)나 허리띠를 매는 게 어떻겠냐 했는데 머리에 다는 게 콘셉트라네요. 그렇게는 못하겠다 거절했다가 내가 다시 전화를 했어요. 우리 매듭을 널리 알릴 기회잖아요."
최근 서울 강남구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 내 공방에서 만난 매듭장 김혜순씨는 "이왕이면 반듯하게 맺은 매듭을 선보여 전통 매듭의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었으면 했다"며 "기계가 아닌 손으로 직접 명주실을 한 올 한 올 짜고 엮은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매듭은 벌써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매듭은 장인의 손끝에서 결실을 맺는 예술이다. 손의 언어라고도 불린다. 손에서 손으로 내려온 전통의 방식대로라면 매듭을 맺기 전에 끈부터 짜야 한다. 누에고치에서 뽑은 명주실을 염색하고 꼬아 짠다. 40년 넘게 전통 매듭 기술을 이어온 그 역시 3m 끈을 짜는데 꼬박 하루 이틀이 걸린다. 그걸로 다양한 형태의 매듭(현재 38가지 기본형이 있다)을 맺고, 술(여러 가닥의 실)을 만들어 드리우면 완성이다.
매듭은 예로부터 복식뿐 아니라 온갖 생활용품에도 쓰였다. 안 쓰인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라는 게 그의 설명. "실용적 목적에서 기원했지만 모든 인류 발명품이 그렇듯 매듭도 미적 감각이 더해져 장식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무형유산이 다양한 문화 속에서 그 모습을 달리하며 변화돼 오듯 매듭도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 안에서 한국 매듭으로 불리는 방식으로 전해내려오고 있죠."
매듭 자체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지난 1월 온라인상에선 한국 전통 매듭의 국적에 대한 소모적 논란이 벌어졌다. 한국전통문화대의 한 동아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승 취약 무형유산을 소개하면서 올린 매듭 게시글에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네티즌들이 몰려와 "매듭은 중국 것이다. 남의 것을 훔치지 마라"는 댓글을 달기 시작한 것.
김씨는 "매듭은 각 나라 문화 속에서 다양한 형태와 용도로 발전해 오늘에 이른 만큼 당연히 누구의 것이라고 할 수 없다"며 "이번 기회로 우리 것뿐 아니라 다른 나라 문화까지 관심을 가져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특히 매듭은 동북아 문화권 안에서도 갈래를 치면서 저마다 특색이 뚜렷하다. "중국은 주로 매듭을 한 군데로 모아 크고 화려하죠. 일본은 매듭보다는 끈이 발달했고요. 우리 매듭은 기본형을 수직으로 연결해 길게 늘어뜨리는 쪽으로 발달했어요." 좌우가 대칭이고, 앞뒤가 같은 모양인 게 우리 매듭의 특징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흔들리는 멋을 좋아했다고 해요. 노리개, 선추, 허리띠에도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매듭을 단 걸 보면요. 휴대전화에 액세서리를 단 것도 우리나라뿐이라고 하잖아요."
그의 스승은 전국의 장인을 찾아다니며 38가지 전통 매듭 기본형을 복원한 김희진(87) 명예보유자다. 그의 시누이이기도 하다. 이화여대 섬유예술과에서 현대자수를 전공한 그는 "자수에 매듭을 접목해 내 나름의 아주 독특하고 특별한 장르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에서 매듭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배우다 보니까 전통에 빠지게 됐다"고 했다. 1968년 처음 매듭을 접한 이후 평생을 매듭에 헌신한 그는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와 한국전통문화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매듭을 현대화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도 허리가 아프고, 손이 아프다고 하는데 나는 다행스럽게도 그런 게 없어요. 앞으로는 매듭을 쉽게 배울 수 있는 책을 내고 싶어요. 아직 의욕이 넘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