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신탄진 살묘(殺猫)남 사건'(본보 9일 자)에서 때 아닌 쥐약 색깔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신탄진 살묘남으로 불리는 70대 노인 김모씨는 지난 13년 동안 파란 쥐약이 묻은 닭고기로 약 1,000마리의 길고양이들을 죽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요. 지난달 13일 대전 대덕구 석봉동의 한 폐가에서 또다시 길고양이 사체와 파란 닭고기가 발견되면서 지역 고양이 돌보미들은 그의 재범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사건이 알려지면서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도 10년 넘게 범행이 이어졌다. 경찰이 동물학대 사건을 가볍게 여긴다"는 비판도 쏟아졌고요.
그러자 사건을 수사 중인 대전대덕경찰서는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건 현장 주변의 폐쇄회로(CC)TV 녹화 영상을 분석해 용의자를 찾고 있다"며 "범인 검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찰은 동시에 두 가지를 강조하며 돌보미들의 주장을 적극 반박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13년 동안 약 1,000마리의 길고양이가 죽었다'는 주장입니다.
경찰은 "최근 10년 동안 총 8건의 신고가 있었고, 그중 독극물이 사망 원인으로 밝혀진 사건은 3건(3마리)이다. 나머지 5건은 약물이 검출되지 않았거나, 고양이 사체 없이 신고된 사건"이라고 밝혔습니다.
(※ 기사가 나간 이후인 12일 오후, 신고건수 8건은 경찰서에 정식 접수된 건만 집계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신고는 받았지만 혐의점을 찾지 못해 지구대·파출소에서 종결 처리된 것은 8건에 포함되지 않은 셈입니다.
일례로 지난해 3월 27일 대전대덕경찰서 신탄진지구대는 "살묘남 김모씨가 쥐약으로 고양이를 죽인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나, 김씨의 차에서 쥐약과 고양이 사체를 발견하지 못해 사건을 종결했습니다.
본보 확인 결과, 해당 신고는 전날 경찰이 발표한 8건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신고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경찰이 오기 직전 내가 김씨에게 차문을 열라고 종용했고 트렁크에서 쥐약 가루를 발견해 사진으로 찍었다. 그때 경찰이 멀리서 다가오자, 김씨는 잽싸게 차를 몰고 도망쳤고 어딘가에서 가루를 털고 돌아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경찰에게 사진을 보여줬지만 '현장 검거 원칙' 때문에 그를 잡지 못한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이 강조한 다른 하나는 바로 쥐약의 색깔입니다. "죽은 고양이는 파란색이 아닌, 빨간색 쥐약으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경찰은 "부검 결과 죽은 고양이와 닭고기에서 '쿠마테트라릴'이라는 성분이 검출됐다. 현장 주변의 약국을 탐문해 본 결과 해당 성분의 쥐약은 두 제품을 판매하더라. 그런데 모두 빨간색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쿠마테트라릴은 쥐약에 쓰이는 유독물질입니다.
단, 신고자가 고양이 사체와 함께 넘긴 닭고기에도 빨간색 가루가 묻혀 있었는지는 육안으로 확인하진 못했다고 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사인을 밝히기 위해 동물병원에서 전달받은 그대로 15일 부검을 맡겼다"며 "사인을 밝히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고 증거 훼손이 될까봐 따로 꺼내 확인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는데요.
이 관계자는 당시 상황도 묘사했습니다. "신고자는 13일 고양이 사체와 닭고기를 발견했는데, 부패를 막기 위해 동물병원에 냉동 보관을 맡겼더라. 우리는 이튿날 신고를 받았고 현장은 이미 치워져 있었다"고 했죠.
그러자 길고양이 사체를 신고했던 돌보미 A(37)씨는 "분명 파란색 가루였다"며 경찰의 '빨간색 쥐약' 설명을 적극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한국일보에 당시 찍었던 사진을 전달하며 "신고 당시 같은 사진을 경찰에게도 보여줬다"고 했습니다.
경찰의 쥐약 색깔 언급에 대해선 "온라인에서 해당 성분의 파란색 제품도 구매할 수 있다"며 "주변 약국만 탐문해서 빨간색으로 단정 지으려는 건, 지난 10년간 살묘남을 못 잡았던 과오를 덮으려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습니다.
또 "분명 경찰에 파란색 쥐약이 묻어 있었다고 했다"며 "쥐약 묻은 닭고기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소극적으로 수사했는지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본보 확인 결과, 실제 유통되는 쿠마테트라릴 성분의 쥐약 중 파란색 약도 있습니다. 국립환경과학원 관계자는 "쿠마테트라릴은 원래 무색·무취한 가루인데, 쥐약으로 만들 땐 독극물임을 표시하기 위해 빨간색이나 파란색의 보존제 또는 착색제를 입힌다"고 설명했습니다.
환경부의 생활환경안전정보시스템 '초록누리'에도 같은 성분의 파란색과 빨간색 제품이 함께 검색됩니다. 초록누리에서 나온 제품명을 검색해 포털에서 파란색 쥐약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쥐약이 원래 빨간색이었는데 어떤 반응에 의해 파란색으로 변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기업 연구소의 화학 분석 전문가는 가능성이 낮다고 했습니다. 그는 "쥐약에 쓰인 착색제의 염료가 변질될 수는 있지만, 빨간색이 파란색으로 변할 가능성은 낮다. 일반적인 경우 색이 옅어지거나 보색으로 변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색이 바뀔 정도로 화학 구조가 변하려면 염산이나 강알칼리성 물질을 들이붓는 등 강한 외부 자극이 필요하다"고 덧붙여 설명했습니다.
지역 돌보미들은 "1,000마리 폐사가 과장됐다"는 경찰의 해명에 대해서도 반박합니다.
13년간 신탄진 살묘남을 추적해온 신혜경(55)씨는 "한 밥자리당 길고양이 4, 5마리가 찾아오는데 그중 가끔 새끼를 밥자리에 데리고 오는 어미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그런데 고양이 가족이 한꺼번에 안 보이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고양이는 영역동물이기 때문에 한꺼번에 이사를 가는 경우는 거의 없고, 전염병으로 가족이 다 죽는 경우도 드물다"며 "그런 경우를 모두 계산해 1,000마리라는 추정치가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신고 건수가 8건에 불과하다는 것도 "신고를 해도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2011년 첫 신고를 할 때 담당 경찰관은 수사도 꼼꼼히 했고 살묘남에게 엄포도 놓았다. 하지만 담당자가 변경된 이후 엄포는커녕 쥐약과 닭고기가 있는 살묘남 김씨의 차 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후 웬만한 경우는 내가 쫓아다니면서 닭고기를 못 놓게 말렸다. 그러다 결정적인 범행 현장을 포착한 게 8번 정도고 그때마다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경찰이 이번 사건의 용의자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앞서 경찰 관계자는 전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지난달 9일부터 13일 사이 현장 주변의 CCTV, 특히 범행이 일어날 법한 밤에 찍힌 영상을 반복해서 봤다. 하지만 아직 단서로 잡힌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관계자는 또 "인근 약국 중 한 곳에서 쥐약을 팔았던 기억은 있다고 하나, 날짜와 구매자의 성별, 판매 제품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쥐약은 물품 관리대장으로 쓰지도 않는데다, 약국 CCTV에 판매장면이 잡히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검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죠.
경찰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고양이에게 독극물을 사용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동물보호법 위반이다. 동물 학대 사건의 중요성에 적극 공감하며 범인 검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그러나 쥐약 색깔이나 추정치에 불과한 마릿수를 과장됐다고 반박하면서, 되레 불신을 더욱 키운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경찰의 말처럼 '진범을 잡아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 수사의 본질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