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있었던 의료계 총파업은 우리 사회를 둘로 갈라놨다. 의대 정원 확대 등 관련 법안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의사들의 집단 행동은 한국의 열악한 진료 환경을 환기시켰지만, 동시에 국민 목숨을 볼모로 삼은 이기적 행동이라는 비판도 피할 순 없었다.
사람들은 각자 처한 위치와 겪은 일에 따라 이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믿음을 가졌다. ‘사회를 둘로 갈라놨다’는 손쉬운 표현은 한 줄을 끝으로 휘발되지만, 진짜 둘로 갈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해의 여지를 만들어 준다. 문장웹진 5월호에 실린 이현석의 단편소설 ‘용납’은 의사 총파업으로 이별 위기에 처한 한 연인을 통해 이 문제를 바라볼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참고로 소설을 쓴 이현석 작가는 현직 의사다.
소설 속 두 인물, 보현과 대경은 동성 커플이다. 둘의 처지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대경은 의사고, 그중에서도 커밍아웃한 의사다. 내과 레지던트를 1년 만에 그만두고 전업활동가로 살면서 생계는 대진(代診) 아르바이트로 꾸리고 있다. 보현은 서울 중심가의 공공의료원에서 일하는 7년 차 남자 간호사다. PA(Physician Assistant), 즉 의사 업무를 대신하기 위해 임의로 차출된 비의사 인력으로 일하고 있다.
둘은 성소수자 단체가 마련한 한 토론회에서 만났다. 동종업계 종사자인 데다가, 고향이 대구라는 공통점까지 더해지면서 곧 서로에게 빠져든다. 사랑은 대개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되지만 이후의 전개는 서로의 차이점을 발견해나가는 것이 전부다. 보현과 대경에게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대경의 부모는 커밍아웃한 아들에 ‘후더운 지지’를 보낸다. “엄빠는 아들을 항상 응원한다,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내고, 아들의 남자 애인을 소개해달라 조른다. 반면 보현의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였고 어머니는 화장실 변기에 책가방을 처박고는 “이 버러지 같은 새끼야, 니는 정신 상태가 썩었다”고 고함을 지르는 사람이었다. 대경은 수시로 부모를 찾아가지만, 보현은 부모와 완전히 절연한다.
그런 차이에도 다정한 연인으로 지냈던 두 사람이 한 순간 “저 인간과 닿았던 살갗을 전부 다 뜯어내고 싶다는 충동이 거세게 일었다”고 말하게 된 발단은 다름 아닌 의사 파업이다. 간호사와 의사라는 서로 다른 처지, 병원의 안과 밖이라는 서로 다른 공간은 둘을 순식간에 가장 먼 자리로 보내버린다. 사랑은 결국 각자 선 자리에서 상대를 얼마만큼 ‘용납’할 수 있는지에 다름 아니었다.
코로나, 대구, 의사 총파업, 이태원발 집단감염, 성소수자 혐오까지. 소설에서 보현과 대경이 이별에 이르기까지 거쳐가는 일들은 모두 실제 지난 한 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이 단편소설 하나에 모든 게 기록돼 있다. 이 연인의 이별 하나를 이해하는 일은 그러니 우리에게 벌어진 일을 이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 소설의 일독을 권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