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노쇼' 전두환, 5월 광주땅 밟기 싫었나… 8분 만에 끝난 재판

입력
2021.05.10 16:03

피고인 전두환(90).

다시는 광주 법정엔 서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하기야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을 8일 앞둔 상황이라면 그랬을 수도 있을 터다. 그는 5·18 당시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지난해 11월 30일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얼마 뒤 그는 "항소심에서 양형 부당과 무죄를 다투겠다"고 항소했다.

그러나 항소심 첫 공판 기일인 10일 오후 2시, 그는 광주지법 201호 형사대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며칠 전 변호인인 정주교 변호사를 통해 서울에서 이동시간을 감안해 재판 시간을 오전 10시 15분에서 오후로 변경해 주고, 부인 이순자(82)씨를 신뢰관계인으로 법정에 동석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던 그였다. 돌연 광주행을 취소한 그는 재판부에 불출석 사유서도 내지 않았다. 이른바 '재판 노쇼(no show)'다.

"전두환을 구속하라.", "사법부를 우롱하는 처사다." 재판 시작 전, 법정 바깥에선 5·18단체와 유족들의 분노가 쏟아졌다. 그렇게 '전두환 재판'은 또 시작됐다.

그러나 이날 재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불과 8분. 재판부인 광주지법 형사1부(부장 김재근)는 첫 공판기일을 24일 오후 2시로 연기한다고 밝히고 서둘러 재판을 끝냈다. 피고인이 공판기일에 출석하지 않으면 개정(開廷)하지 못하고, 다시 기일을 잡아야 한다는 형사소송법(제276·365조) 규정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24일에도 피고인이 불출석한다면 관련 규정에 따라 재판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전(前) 대통령이었던 피고인의 법정 진술 없이 판결을 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법정에 직접 나와 "5·18 당시 헬기 사격은 없었다"는 그간의 주장을 다시 펼쳐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연기된 첫 공판기일에도 '피고인 전두환'의 모습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 정 변호사는 재판이 끝난 뒤 "24일에도 피고인은 출석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했다. 1심 때부터 알츠하이머에 걸린 ‘(내란목적)살인자의 기억법’을 두둔하며 편들었던 정 변호사의 언어치곤 다소 예상 밖이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피고인의 변론권 포기"라는 해석이 나왔다. 재판부가 공판기일을 24일로 다시 택일한 것을 놓고도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고 조비오 신부 조카 조영대 신부의 법률대리인인 김정호 변호사는 "재판부가 피고인의 불출석을 5월에 광주에서 재판을 받는 것을 피하려는 꼼수로 보고 절묘하게 날을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과연 그는 5월이 가기 전에 광주땅을 다시 밟을까.

안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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