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년 전 남편의 외도 문제로 상담신청서를 썼었습니다. 상담으로 연결되진 않았어요. 나름대로 남편을 용서해보려고 노력해왔는데 올해 초 남편이 또 외도를 했습니다.
저희는 외국에 살고 있고, 남편은 외국인입니다. 대학 때 이곳 문화에 흥미가 생겨서 졸업 후에 저 스스로 돈을 벌어 이곳으로 공부하러 왔습니다. 남편을 만나 결혼해 정착했습니다. 남편은 학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학원에 다니는 아이의 학부모와 바람을 피웠어요. 첫 외도 상대는 한 중소기업 사장이었고, 16세 아들이 있는 유부녀였어요. 2년간 수천만원의 임대료를 대신 내줬고, 남편에게 옷과 신발을 선물했어요. 수시로 용돈도 줬고요. 당시에 외도녀가 제게 외도 사실을 알리겠다고 하자 남편은 먼저 무릎을 꿇고 저한테 외도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저와의 잠자리가 불만족스러워서 그랬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저 몰래 불법 성매매업소도 갔습니다. 용서를 빌던 남편은 제가 외도녀를 만났다는 걸 알고는 저를 때렸어요. 그런 끔찍한 일을 겪고도 저는 가정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어요.
남편은 이혼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시아버지는 폭력적이었고, 시어머니는 남편이 중학생 때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아들을 버리고 집을 나갔습니다. 남편은 엄마에게 버림받은 상처가 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시어머니와 자주 연락하고 지냅니다. 시어머니는 아들의 불륜을 알고도 막지 않았어요. 남편은 생활력이 강하고,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합니다. 자신의 일과 돈에 대한 욕구와 야망도 크고요. 외도가 발각되고 난 후에는 그 여자들이 자신의 사업을 망가뜨릴까 늘 불안해합니다. 남편은 화를 잘 내고 미안하단 소리도 잘 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전혀 돌봐주지 않고, 예뻐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가난한 집에서 자랐어요. 아버지는 무능했고, 어머니는 온갖 궂은 일을 했어요. 항상 돈에 쪼들렸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주 싸웠어요. 하지만 제게 가족은 소중했어요. 아무리 가난하고 부모님이 싸워도 두 살 터울인 오빠와 고생하는 엄마에게 의지해 행복하다고 여기며 살았어요. 제가 성공해서 고생하는 엄마의 기쁨이 돼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남편의 첫 번째 외도 후 아이와 함께 도망치듯 한국으로 나와 친정에 외도 사실을 말했어요. 가족들은 이혼 후의 삶이 쉽지 않다며 용서하고 계속 살라고 했어요. 저도 아이를 혼자 키울 자신이 없어 집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올해 또 다른 학부모와 외도를 저질렀어요. 남편의 외도는 저의 인생을 망가뜨렸습니다. 하루 종일 생각나고, 남편이 계속 외도를 할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립니다. 외도녀들에게 복수하고 싶습니다. 요즘 남편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혼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혼이 저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남편의 반복된 외도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저에게 생명 같이 소중합니다. 제가 이 가정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소리(가명ㆍ39ㆍ직장인)
2년 만에 다시 보낸 당신의 사연을 굉장히 가슴 아프게 읽었어요. 아이를 낳고 사는 부부에게 어느 누구도 인생의 답을 정해줄 순 없지만, 저와의 상담이 당신의 내면과 당신이 고민하는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는 데 작게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혼을 해야 한다는 걸 당신도 왜 모르겠습니까. 누군가는 ‘당연히 이혼해야지, 왜 빨리 이혼을 못해’라고 탓할지 모르지만 사람마다 사정이 다 다르지 않습니까. 당신도 그게 힘들어서 제게 사연을 보냈을 거라고 생각해요. 상담을 통해 당신이 이혼하기 힘든 이유를 한번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먼저 남편이 어떤 사람일지 생각해봅시다. 일단 저는 일면식도 없는 소리씨 남편분을 파악하는 것도 조심스럽고, 그의 문제점이라고 생각되는 면을 언급하는 것도 사실 많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수년간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 남편의 문제행동을 파악하고 소리씨가 이 위기에서 끝도 모르는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피폐해지지 않도록 돕기 위해서 두 번의 사연을 토대로 조심스럽게 추측해보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남편은 본인이 너무 중요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남편은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고 싶어해요.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자기만을 향하고 있어요.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서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고 싶어하죠. 하지만 남편은 아내나 딸과 같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돈을 벌고, 성공하고 싶어해요. 외도 사실을 알릴 때조차 아내가 받을 상처보다 본인의 체면이 더 중요한 사람이에요. 더 냉정하게 보면 본인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니까 자기를 위해서라면, 자기가 즐거우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면, 자기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방법과 수단은 중요하지 않은 사람 같습니다.
부부가 사랑해서 결혼해도 성격이 안 맞을 수 있고, 잠자리에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당장 외도를 하거나 성매매업소를 찾진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부간의 신의를 지킵니다. 서로 배려하고 노력하죠. 반면 남편은 본인의 성적 만족을 위해서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스스럼없이 합니다. 그것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하나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보다는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이유를 먼저 찾고 그래서 언제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도리와 가치를 고려하기보다 오로지 자기가 원하는 목적과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조심스러운 추측이지만 남편의 이런 성향은 어린 시절 부모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폭력적인 아버지와 외도한 어머니로부터 건강한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처리하는 경험을 배우지 못한 거죠. 남편은 누군가와 아주 격렬하고 진득한 감정적인 경험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어서 사랑한다’기보다 상대에 관계없이 흥분되고 짜릿하고 강렬한 관계를 좇는 거예요. 이런 사람은 안정을 기반으로 하는 결혼관계를 지속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남편은 철저하게 자기에게 유리한 조건을 가진 상대와 외도를 저질러요. 사업에 도움이 된다면 누구여도 상관이 없을 거고, 비슷한 과오를 다시 저지를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그렇다면 이런 사람과는 이혼을 하는 게 좋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인간이니 실수할 수 있다고 칩시다. 하지만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한다는 건 상대인 아내를 중요한 사람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이 말이 당신에게 상처가 될까 굉장히 염려스럽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당신에 대한 마음이 변해서 이젠 당신을 사랑한다고 보기 어려워요. 소리씨, 결혼은 사랑을 기본으로 하는 신의가 굉장히 중요해요. 시간이 흐르면 불 같았던 사랑이 조금씩 사그라드는 반면 서로를 안타까워하고 애처로워하는 등 삶의 굴곡을 함께 하면서 쌓인 다양한 감정으로 진화합니다. 사랑에 기반한 이런 감정들이 없다면 결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당신은 그런 취급을 받을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도 이혼해야 한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런데 당신이 유독 결정하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이를 혼자 기르기 힘들어서일까요. 제가 보기에 당신은 매우 자기 주도적으로 삶을 살아왔어요. 언제나 삶을 개척해왔어요. 어릴 적 가정환경은 어렵고 힘들었지만, 가족 안에는 사랑이 있었어요. 당신은 남에게 기대지 않고, 마음 속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온 사람이에요. 부모의 도움 없이 맨손으로 대학에 무난하게 진학했고, 회사를 다니다가 스스로 결정해서 공부하고, 외국에도 나가고, 주도적으로 자기의 삶을 노력해서 가꿨어요. 경제적 능력도 있어요. 그런 당신이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 때문에 힘든 결혼관계를 억지로 유지하는 것 같진 않아요.
제가 보기에 소리씨의 어머니에게 받은 영향이 당신이 이혼을 결정하는데 어려움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소리씨의 어머니는 훌륭한 분입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고, 자녀들을 키웠어요. 경제적인 어려움과 남편과의 불화에도 꿋꿋하게 참고 버티면서 끝까지 가정을 유지했어요. 이런 어머니의 절대적 헌신과 희생적 사랑이 당신 내면에 뿌리 깊게 박혔을 거예요. 당신은 어머니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을 희생해서라도, 당신이 인내하고 버텨서라도 가정을 지키는 게 자녀에 대한 사랑의 결정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래서 당신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고, 그렇게 안 하면 자녀를 엄마로서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 두려움마저 들 거예요.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견뎌내서 이혼하지 않고 온전한 가정을 만드는 게 자녀와 어머니를 연결하는 단단한 동아줄 같이 느껴지는 거예요. 남편의 외도와 말도 안 되는 태도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이혼하기 힘든 이유는 자녀와 단단하게 연결된 그 동아줄을 당신 스스로 끊어버리는 것 같은 생각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에요. 이혼을 결정하면 당신 안의 헌신하고 희생하는 엄마로서의 사랑을 스스로 놔 버리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동아줄을 놓는 것이 당신 스스로 ‘내가 이렇게밖에 못 견디나’라는 자괴감마저 들게 하고요.
소리씨, ‘우리 엄마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그 고생을 했는데’라는 기준에서 벗어나야 해요. 그 기준을 당신에게 적용하면 안 돼요. 당신의 남편과 아버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고, 당신과 당신의 어머니 또한 다른 사람이에요. 당신은 자녀를 위해서 온전한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기준이 너무 과도할 정도로 높게 설정돼 있어요. 반면 남편은 가정생활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선을 넘어갔어요. 당신이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이유가 당신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라든가, 당신의 됨됨이에 문제가 있거나, 당신이 약한 사람이거나,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는 얘기를 꼭 해주고 싶어요. 남편의 외도 상대에 대한 복수심이 드는 것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당신 안에 극심한 분노와 이를 되갚아주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크면 그 마음 때문에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쉽지 않겠지만 남편과의 관계를 주도적으로, 이제껏 당신이 원하는 삶을 노력해서 걸어온 것처럼, 당신의 가치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주도적으로 남편과의 관계를 청산하기를 바랍니다. 자녀를 위해서보다 무엇보다 소중한 당신을 위해서예요.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자녀보다 당신을 먼저 두세요. 엄마가 더 안정되고 편안해지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어야 자녀도 안전하고 건강하게 잘 키울 수 있습니다.
배우자가 외도를 하고 신뢰를 저버려도, 당신이 언어폭력과 신체폭력을 당해도, 외도를 하고도 너무나 당당한 남편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어도 당신은 아이에게 우주입니다. 이 우주에 하나뿐인 반짝이는 작은 별 같은 존재입니다. 당신은 그런 존재입니다.
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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