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상업화가 선을 넘었을 때

입력
2021.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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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급 정체성으로 출발한 축구팬덤
세계화 성공했지만 '축구다움' 잃어
'금도' 넘은 유럽수퍼리그 결국 무산



세계적 석학으로서 상원의원인 영국의 사회학자 앤토니 기든스 선생은 토트넘 홋스퍼 축구클럽의 열성 서포터로 알려져 있다. 그가 총장을 지낸 런던정경대(LSE)의 홈페이지와 자전적 인터뷰에서도 그 점을 강조한다. 1997년 방한한 선생을 만나 자기 소개를 했다. “저도 토트넘 서포터입니다.” 선생은 내가 같은 구단을 응원한다는 사실에 반가워하면서도 그 경위를 궁금해했다. 10대의 일부를 런던에서 보냈고 유학 시절에 북런던에 거주했음을 설명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선생이 진정 나를 동류로 생각했을지는 미지수이다. 토트넘 구장에서 1마일 떨어진 가난한 동네에서, 지하철 하급사무원의 아들로 태어나 윤택하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의 축구 열정은 당시 축구 팬덤이 일반적으로 그러했듯이 노동계급의 정체성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선생은 세계화에 대한 연구를 선도하는 학자였다. 90년대는 세계화로 인해 축구의 지형이 크게 변화하는 시기였다. 1992년 잉글랜드 1부리그 구단들이 기존 리그를 떠나 프리미어리그를 만들었다. 같은 해 유러피언컵은 챔피언스리그로 탈바꿈했다. 그러한 변화에는 미디어의 탈규제화에 따른 글로벌 방송산업의 개입이 있었다. 상업화된 중계방송 덕분에 엘리트 구단의 팬덤은 전 지구로 확대되었다.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 토트넘은 전 세계에 1억8,000만 명의 팬을 가지고 있다고 추산한다. 그중 영국 거주자는 2% 미만이다. 기든스는 이를 어떻게 볼까? 소위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여파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지 않는 선생은 전통적 정체성의 희석과 팬덤의 세계화라는 두 현상을 균형 있게 바라볼 것이다. 더욱이 사회학자인 그가 지역사회와 영국의 계급구조가 변하여 토트넘 국내 팬의 다수가 중산층이 되었음을 인지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폭발적으로 강화된 축구의 상업화와 자본의 지배를 사회민주주의자인 선생이 관대하게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1998년에 실패했다가 최근 다시 세계 여론을 강타한 유러피언 수퍼리그의 창설 시도에 대해서는 대중의 분노에 공감할 것이 분명하다. 참여를 선언한 잉글랜드의 6개, 스페인의 3개, 이탈리아의 3개 구단을 포함해 15개 구단으로 창립하고 5개 구단을 더 초빙해 20개 구단으로 출범하려 한 수퍼리그는 JP모건체이스가 50억 달러 초기 투자를 약속한 데에서 보듯이 아름다운 ‘잉글리시 게임’을 글로벌 금융자본에 종속시키게 될 것이었다. 참여 구단에 약속된 지원금과 방송수입 등 상업적 이익의 분배는 엄청난 규모이다.

특히 공분을 불러일으킨 것은 15개 ‘창립 구단’은 강등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카르텔에 대해 적대적 여론이 비등하자 각국 정부가 성토에 나섰고, 배제된 구단은 물론 참여 구단의 주요 선수들, 그리고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방송사들까지 비난 대열에 합류하자 창립 구단도 하나둘씩 불참을 선언해 수퍼리그는 결국 무산되었다.

토트넘 홋스퍼가 수퍼리그에 부름을 받았으니 레알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맨체스터시티와 동급으로 취급됨에 기뻐해야 할까? 북런던의 숙적 아스날이 참여하는 그룹에서 배제되지 않았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할까? 영국 문화부 장관 올리버 다우든은 수퍼리그를 비난하면서 레스터시티 축구클럽을 치켜세웠다. 그 구단은 3부리그에서 2부로 승격한 지 7년 만인 2015~16년 프리미어리그를 제패했고 챔피언스리그 8강에 도달했다. 올 시즌에는 3위를 달리고 있다. 전후 동유럽 난민과 인도 출신 이주민의 정착지로 잘 알려진 레스터는 스포츠사회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기든스 선생이 전임강사로 첫 취업한 곳이기도 하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