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기, 월 2400개가 줄었다... "단체 도시락·사내 카페부터 다회용기를"

입력
2021.05.0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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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을 위해 도시락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일회용품을 쓰는 건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한 번 해보자는 생각에 시작했습니다."

9일 서울 성동구 도시락·케이터링 서비스 업체인 '바른참' 작업장에서 일에 몰두하고 있던 안선영 대표의 말이다. 안 대표는 밥, 국, 두부부침, 잡채, 김치 등을 알록달록한 용기에 먹음직스럽게 담고 있었다. 도시락 업체 풍경이야 늘 이렇겠거니 싶지만, 차이는 있다. '다회용기'를 쓰는 곳이라는 점. 그러니까 이곳 플라스틱 용기는 배달하면 끝이 아니라, 되가져와 씻어서 다시 쓴다.

안 대표는 지난달부터 서울 중구청이 관내 취약계층에 제공하는 '돌봄SOS도시락' 약 50인분을 맡았는데, 과감하게 다회용기를 쓰기로 했다. 배달에 쓰는 비닐봉투도 생분해 재질의 봉투를 쓴다. 도시락 배달 과정에서 불필요한 쓰레기를 최소화하겠다는 생각에서다.

한 달 다회용기 쓰니, 일회용기 2,400개가 줄었다

바른참이 구성한 도시락 1인분은 밥통, 국통, 반찬통 4개 등 모두 6개의 다회용기를 쓴다. 원래 일회용기 4개를 쓰던 제품이었다. 이렇게 해서 50인분만 해도 일회용품 사용이 한 번에 200개가 줄더니, 한 달(주 3회)에 2,400개가 줄었다. 다회용기는 스타트업체인 '트래쉬버스터즈'가 수거해서 세척한 뒤 바른참에 다시 빌려준다.

다회용기는 비싸다. 수거, 세척 비용이 더 들기 때문이다. 1인분당 500원 정도니까, 50인분이면 2만5,000원을 더 내야 한다. 이 정도야 기꺼이 부담하겠다는 생각에 다회용기를 쓰기로 했지만, 반응이 좋아 더 기쁘다. 안 대표는 "도시락 배달 외에 행사 케이터링 서비스에도 다회용기를 시범적으로 써보고 있다"며 "일단 행사 주최 측에서 '쓰레기가 안 나와서 좋다'는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고 전했다.

'다회용 배달'이 대안이라는데, 발목 잡는 비용

코로나19 탓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배달시장 때문에 일회용품 쓰레기도 폭증하고 있다. 모두가 문제라고, 다회용기를 써야 한다고 말하지만 배달시장에서는 꿈 같은 이야기로 치부된다. 귀찮고 돈 들어서다. 싸고 편리한 일회용기로 무장한 '일회용 사회'에서 다회용기는 번번이 패배한다. 바른참 사례처럼 개인의 선한 의지에 기대거나 그저 배달 앱에서 '일회용 수저, 포크 안 주셔도 돼요'를 체크하는 데 그칠 뿐이다.

다회용기 배달의 가장 큰 걸림돌은 수거 비용이다.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같은 배달앱처럼 개별 건으로 거래하는 경우 집집마다 찾아가 수거해야 하는데,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곽재원 트래쉬버스터즈 대표는 "몇 개 안되는 다회용기를 일일이 수거하러 다니기엔 인건비, 유류비가 너무 많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단체 도시락이나 케이터링 서비스처럼 한 번에 많은 물량을 다루는 경우, 아니면 기업체 등 상주 인구가 많은 곳에서 다회용기를 쓰도록 하는 일부터 시작하고 있다.

사내 카페서 다회용기 쓰니 컵 1,000개 아꼈다

실제 지난달부터 KT 광화문 사옥, GS 강남 사옥 등 기업들이 사내 카페에서 다회용컵 대여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들 카페에서는 트래쉬버스터즈가 공급한 다회용컵에 음료를 제공한다. 손님은 이걸 자기 사무실 등으로 자유롭게 들고 갈 수 있다. 다 쓴 컵만 각 층마다 설치돼 있는 수거함에 '버리면' 된다. 트래쉬버스터즈는 이를 수거, 세척해 다시 대여한다. 사내 카페를 찾는 이들 대부분이 그 회사 직원들이라 사옥을 벗어나는 일이 없다는 점에 착안했다.

포인트는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자연스럽고 쉽게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이다. KT의 경우 이렇게 해서 사내 카페에서 절약하게 된 플라스틱 컵만 하루 1,000개 수준이다. 최근에는 한 영화관 체인점의 팝콘, 콜라 용기를 다회용기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곽재원 대표는 "일회용품을 줄이려면 환경부나 지자체가 '텀블러를 씁시다' 같은 캠페인만 할 게 아니라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별 거 아니게, 편하게 환경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옥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