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장면 비디오로 찍겠다?...美 공화당 아직도 '부정 선거' 프레임 허우적

입력
2021.05.03 04:45


미국 공화당이 ‘헛된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잇따라 주장했던 ‘선거 부정’이라는 프레임을 고수하는 모습이다. 선거 참관인의 권한을 확대하겠다는 정책을 밝히면서 투표 장면을 비디오 촬영하겠다는 내용도 끼워 넣었다. 비밀선거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인 데다가 감시를 하겠다는 마땅한 이유도 없어 여론의 역풍이 예상된다.

'스윙 스테이트'(민주·공화 양당에 고른 지지를 보내는 지역) 출신 공화당 의원들이 새로운 선거법을 마련해 선거 참관인에게 더 많은 자율성과 접근권을 부여하려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1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공정 선거를 추진한다는 데에 불만을 가질 사람은 없지만 공화당의 생각은 일반인의 ‘공정’과 결이 다르다는 것이 문제다.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유색인종 공동체를 표적으로 하겠다는 속내가 드러난 것이다.

실제로 텍사스주 최대 도시 휴스턴을 끼고 있는 해리스카운티 공화당이 지난 3월 연 회의에서 흑인 및 히스패닉, 아시아계 주민 거주지를 대상으로 “선거 사기가 발생하고 있는 지역”이라고 주장하면서 투표 감시인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NYT는 전했다.

공화당의 선거 참관인 법안은 이미 가시화됐다. 뉴욕대 브레넌정의센터는 지난달 15일 기준 20개 주에서 최소 40개의 관련 법안이 발의됐으며 이 중 6개 주, 12개 법안이 처리 단계에 돌입했다고 집계했다. 참관인이 유권자와 선거 사무원을 감시할 수 있는 법안도 33개가 발의됐고 11개가 처리 중이며 이미 조지아주에서는 통과됐다고 덧붙였다. NYT는 텍사스 주의회는 유권자들의 행동을 사진 및 동영상으로 촬영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한다고도 전했다.

공화당이 이런 움직임에 돌입한 것은 2020년 대선을 ‘도둑맞았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영향이란 평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개표 과정에서 민주당 성향 지역에서 “투표 참관인들이 출입을 거부당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데일 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투표권프로젝트 책임자는 NYT에 “이러한 법률의 최고 목표는 ‘거대한 거짓말’을 영속시키는 데에 있다”고 꼬집었다.

김진욱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