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이 배우는 ‘도덕 4’ 교과서의 ‘치우침 없이 바르게 판단해요’(110페이지)는 다문화 가정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단원이다. 학생들은 ‘성민이랑 놀지 마’라는 약 4분가량의 동영상을 시청한 후 수업을 진행한다. 그런데 이 영상은 온갖 차별과 혐오로 가득하다.
현주네 집에 놀러 온 다문화 가정 성민이가 받아쓰기에서 60점을 받았다는 얘길 들은 현주 엄마는 한숨을 쉬며 성민이에게 말한다. “60점? 아휴… 아무리 엄마가 필리핀에서 왔어도 그렇지 60점이 뭐야, 60점이...” 이 말에 현주가 “엄마~”라며 민망해하고,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현주 엄마는 현주가 다문화 가정 아이인 성민이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현주 엄마는 학교에서 우연히 만난 성민이 엄마에게 “성민이는 영어보다 한글 받아쓰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은데…”라며 계속 무례한 행동을 이어간다.
그러다 현주 엄마는 선생님으로부터 성민이 엄마가 필리핀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는 얘길 듣곤 깜짝 놀라고, 내레이션이 뒤따른다. “그동안 필리핀 이주여성이라고 성민 엄마를 무시했던 현주 엄마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이후 현주 엄마는 성민이를 따뜻하게 대하고, 영상은 “그날 이후 현주 엄마는 성민이도, 성민이 엄마도, 또 다른 어떤 다문화 가정도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되었답니다”라는 설명과 함께 끝난다.
엄마가 필리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민이를 무례하게 대하는 것은 다문화 가족에 대한 편견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지만, 아주 잘못된 방식이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최종적으로 작품의 의도가 좋은 방향이라고 하더라도 차별적인 언어를 직접 기술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약자의 삶을 이해하는 의도로 썼지만 결국 약자의 삶을 차별적인 언어로 전시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 평론가는 또 “상황을 보여주고 단순하게 이해를 요구하는 것은 자칫하면 그 소재를 재대상화할 수도 있다"며 "오히려 차별을 강화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영상엔 다문화 가정에 대한 차별만 있는 게 아니다. 여성인 현주 엄마는 편견에 가득찬 무례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아동콘텐츠에서 보통 기혼여성을 악역이나 교양없는 인물로 소비하는 행태를 그대로 답습한다.
또 성민이 가족을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된 이유가 성민 엄마의 직업이 ‘초등학교 교사’였다는 지점엔 직업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성민이 엄마가 좋은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 아니라면 계속 함부로 대해도 됐단 말일까. '치우침 없이 바르게 판단해요'라는 단원의 목표와는 반대로 외려 치우침을 유도하는 영상에 가까웠다.
교육부 산하 교과서민원바로처리센터에는 지난달 23일 이 예화를 삭제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교사로 추정되는 제안자는 “한국 어머니가 필리핀 이주여성인 학부모를 비하하는 듯한 모습이 있는데, 실제로 학급에 필리핀 어머니를 둔 다문화 학생이 있어 상처가 될 수도 있다고 보여져 적절치 않은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교과서를 제작한 지학사 측은 “해당 내용 전체를 삭제하거나 재구성을 도모하는 등 수정 보완이 가능할지 등을 연구하겠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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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에 빠지다
<2> 모욕을 주는 성교육
<3> 편견 가르치는 교과서
<4> 차별 없는 아동콘텐츠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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