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슬·이승기 대신 윤여정·강부자? MZ세대, '쿨한 할머니'에 꽂히다

입력
2021.05.0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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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식부터 뷰티까지 윤여정·나문희·강부자 모델로
젊은 톱배우에서 '시니어 모델' 기용하는 발상 전환
"MZ세대가 원하는 것, 할머니들이 가지고 있다"

까맣고 풍성한 머릿결을 휘날리며 큰 키와 늘씬한 팔다리, 잡티와 주름 하나 없는 얼굴이 화면을 향해 싱긋 웃는 모습. 우리에게 익숙한 화장품과 패션 광고의 이미지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이렇게 쏘아붙인다. "됐어 얘, 남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사."

여성, 그중에서도 10대와 20대가 핵심 고객인 의류 쇼핑 플랫폼 지그재그가 최근 70대 배우 윤여정을 출연시킨 광고는 소위 '대박'이 났다. 2주 전부터 특유의 당돌한 모습 그대로 "옷 입는데 남의 눈치 볼 거 뭐 있니?" "입고 우기면 돼" "니들 마음대로 사세요"라고 말하는 영상을 시리즈로 올렸는데 조회 수가 440만 건을 넘었다.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신선하다" "멋지고 우아한데 경쾌하기까지" "이래서 모델이 중요하지"라며 호응이 쏟아지고 있다.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가 할머니들에게 푹 빠졌다. 이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간편식부터 화장품, 패션 등 유통업계 기업들 사이 7080 시니어 모델 열풍이 부는 배경이다. 신선한 재미 요소와 닮고 싶은 모습이 당당하면서도 '꼰대'스럽지 않은 할머니 연륜에 담겨 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한예슬→윤여정, 이승기→강부자

원래 지그재그 모델은 뷰티업계 단골 모델인 배우 한예슬이었다. 피부과학의 리더를 표방한 화장품 전문 브랜드로 이승기, 양세종 등 2030 남자 배우를 모델로 쓰던 리더스코스메틱 광고에는 1941년생 강부자가 등장한다. 그와 동갑인 나문희는 CJ제일제당이 MZ세대를 겨냥해 내놓은 간편식 햇반컵반 모델로 활약 중이다.

이제 할머니들은 멀게만 느껴지는 존재가 아니라 트렌디하고 닮고 싶은 존재가 됐다. 지긋한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하지만 권위적이지도 않다. "남을 의식하지 말라"고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지는 메시지에 젊은이들이 열광한다.


익숙함을 깨는 '낯선 재미'

신선한 재미 요소 역시 MZ세대의 사랑을 받는다. 배우 나문희의 경우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호박고구마!"를 외치던 장면이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까지도 유행처럼 돌고 있다. 이른바 '밈'(웃고 즐길 수 있는 짧은 영상이나 언어) 문화를 이끈 주역이다. 공경의 대상으로만 인지되던 어르신이 코믹한 상황을 연출하는 'B급 감성'과 만나는 데서 오는 불균형이 낯선 재미로 다가온 셈이다.

CJ 광고에서도 나문희는 익살스러운 탐정 역할이다. 소비자들은 나문희를 '문희찡' '문희쓰' 애칭으로 부르며 "찰떡이다" "귀엽다" 등의 반응을 남겼고 조회수는 공개 5일 만에 60만 건을 돌파했다. 리더스코스메틱의 강부자는 젊은 모델들과 춤을 추고 랩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MZ세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이들이 원하는 이미지와 재미를 선사하는 게 중요한 마케팅 전략이 됐다"며 "40대나 50대보다는 먼 존재이지만 완숙한 신뢰감을 주고 왠지 청춘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할 것 같은 이미지가 강해 젊은 톱스타 배우를 쓰던 광고계 불문율이 할머니 등 시니어 모델 기용으로 깨지고 있다"고 말했다.

맹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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