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애플리케이션 '로빈후드' 등으로 무장한 개인 투자자 집단의 시대에도, 롤모델은 필요하다.
테슬라의 수장 일론 머스크와 인수목적회사(SPAC) 성공으로 인기를 모으며 '스팩 킹'으로 불리는 벤처투자회사 소셜 캐피털의 수장 차마스 팔리하피티야 등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적극 활동하며 그들의 대변자가 됐다.
올 초 게임스톱(GME) 사태 등으로 개인 투자자들과 충돌한 기존 금융가에서는 이들을 당연히 불편하게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이들을 지지하던 개인 투자자 가운데 일부도 이들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최근 자신들이 투자했던 자산에서 전부, 또는 일부 차익을 실현했다는 행위를 '배신'으로 규정하는 이들이 있다.
두 우상의 SNS 활동이 투자자들을 끌어모으고 나면, 자산의 가격이 오르고, 어느 순간 이익 실현을 하게 된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일종의 주가 조작(manipulation)이 된다는 게 비판자들의 지적이다.
물론 내부 정보를 이용했거나 가짜 정보를 흘리고 고점에서 매도하는 등 전통적 의미의 조작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투자자로서 이들의 움직임을 경계할 이유는 충분하다.
1월, 블룸버그의 한 칼럼은 머스크와 팔리하피티야, 그리고 유망한 첨단기술 투자에 적극적인 아크(ARK) 인베스트먼트의 캐시 우드 최고경영자(CEO)까지 셋을 묶어 "개인 투자자들의 사랑을 받는 우상(idol)"이라고 칭했다.
혁신과 첨단기술 등을 옹호하면서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는 점 외에도,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 등에서 활동하는 젊은 개인 투자자들과 지속적으로 대화한다는 점이 공통점으로 꼽힌다.
세 사람 중 주류 금융인에 가까운 우드를 빼고, 머스크와 팔리하피티야는 트위터에서 주저 없이 자신의 투자 계획을 공개하면서 개인적으로 소통을 활발히 하고 있다.
기존의 점잖은 월가 금융인들과 눈에 띄게 다르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널리 알리며 이들은 인기 스타로 발돋움했다.
또 그들이 찍는 자산마다 '달로 떠나고(To the Moon·가격 급상승을 뜻하는 인터넷 은어로, 한국어로 치면 '떡상'과 비슷한 의미)' 있다. 게임스톱 같은 '밈 스톡(Meme Stock·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주식 종목)'이나, 비트코인, 도지코인(Dogecoin) 모두 이들의 응원 덕을 봤다. '유행(밈)이 곧 수익'이 되는 시대다.
하지만 이들의 유명세는 이들을 공격에 노출시키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팔리하피티야는 자신이 스팩을 통해 상장시킨 기업 지분을 매도했다는 이유로, 머스크는 비트코인 일부를 팔아 이익 실현을 했다는 이유로 공개 비판에 시달렸다.
팔리하피티야는 3월 초 자신의 스팩 제1호로 합병해 상장한 우주 여행사 버진갤럭틱의 개인 지분을 모두 처분했다는 사실이 공시로 드러나면서 고난을 겪었다.
팔리하피티야가 버진갤럭틱을 완전히 손절한 것도 아니고, 운영하는 기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버진갤럭틱에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가 지분을 매각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버진갤럭틱과 그가 운영 중인 여러 스팩의 주가가 급락했다.
팔리하피티야는 버진갤럭틱의 개인 지분을 처분한 것을 두고 "불평등과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업들에 투자하기 위해 투자 자금이 필요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스팩은 특히 운영자의 안목과 네트워크의 힘이 중요하기 때문에, 팔리하피티야의 일거수 일투족에 따라 주가가 오르락내리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지분 처분도 "그가 정말 우주 개발에 미래가 있다고 확신할까?"라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팔리하피티야는 1월 게임스톱에 개인 투자자들이 몰려 주가가 크게 올랐을 때도 짧게 투자했다가 이익을 보고 빠져나온 적이 있다. 이후 게임스톱의 주가는 한때 급락하면서 투자자들을 혼란에 빠트렸다. 물론 이 건은 팔리하피티야의 매매가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때다.
머스크는 가상화폐 때문에 논란에 휩싸였다. 테슬라가 비트코인 1억1,000만 달러(약 1,123억 원)어치를 비롯해 가상화폐 2억7,200만 달러어치를 팔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머스크는 테슬라가 3월 비트코인을 사들였다고 알리면서 "당신은 비트코인으로 테슬라를 살 수 있다"고 밝혀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의 가격 상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테슬라는 매입한 자산 일부를 팔아 수익을 내고 기업 실적도 개선한 것이다.
투자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머스크는 "테슬라와 달리 내 개인으로 보유한 비트코인은 하나도 팔지 않았다"며 "테슬라는 비트코인의 유동성을 시험해 보기 위해 보유 지분 10%를 판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머스크가 비트코인을 가지고 있는지, 팔았는지 등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는 그저 말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에게 질문을 던진 개인 투자자 중 하나인 유명 개인 투자자 데이브 포트노이는 머스크의 답변에 "나도 내 비트코인을 100% 보유하고 있다. 1비트코인 보유자로서 머스크에게 질문을 해봐야 했다"고 답했다. 사실상 믿지 않는단 뜻이다.
머스크의 "유동성을 시험해 보기 위해(test liquidity)"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 밈이 됐다. 이를테면, 테슬라 주식을 팔아 놓고 "테슬라 주식의 유동성을 시험해봤다"고 표현하는 식이다.
이런저런 사건 속에 기존 월가 투자자들은 물론 '암호화폐(cryptocurrency)' 업계의 인사들도 팔리하피티야나 머스크의 행동을 곱게 보지는 않고 있다.
헤지펀드 그린라이트캐피털을 이끄는 데이비드 아인혼 창업자는 15일 투자자에게 보낸 서신에서 "머스크와 팔리하피티야가 게임스톱 사태에 기름을 부은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개인 투자자들이 기업 주가에 대해서 자유롭게 토론하는 것은 권장해야 하지만 머스크 같은 유명 투자자들은 다른 의도가 있는지 당국이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머스크의 행동은 2018년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그를 주가 조작 혐의로 조사했을 때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며 규제 당국에 책임을 물었다.
일론 머스크가 최근 응원하고 있는 '도지코인'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한다. 도지코인은 비트코인처럼 발행량이 한정된 것도 아니고 '온라인 금'으로 각광을 받는 것도 아닌, 애초에 다른 암호화폐의 '패러디'로 만들어진 코인이기 때문이다.
결국 도지코인의 상승세를 이끄는 것은 머스크의 응원이다. 리서치 기업 '피플세이'의 조사에 따르면 도지코인 투자자 약 40%가 머스크 트윗을 계기로 거래를 했다.
비트코인 다음으로 거래량이 많은 암호화폐 이더리움의 공동 개발자인 찰스 호스킨슨은 "도지코인은 주로 머스크의 응원과 소수 기민한 '고래'들의 움직임이 합작한 거품"이라며 "머스크는 도지코인의 상승세를 정말 즐기는 것 같지만 이것이 떨어지고 나면 암호화폐 산업 전반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