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은 실패했나

입력
2021.04.28 18:00
26면
방역모범국 백신 접종 늦어 난처하지만
피해 상황 백신선진국보다 월등히 나아
백신 앞세운 정치 논란 방역 도움 안 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중대한 보건 위기인 만큼 방역 성과가 정치적 파급력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트럼프의 재선 실패, 보우소나루(브라질)의 지지율 추락은 복합적이지만 허술하고 엉뚱한 코로나 방역과 무관하지 않다. 그 반대편에 아던(뉴질랜드), 차이잉원(대만) 같은 리더십이 있다.

선제적인 확산 차단, 감염 추적, 치료가 중심이던 방역 성공의 기준이 지난해 말 백신 등장 이후 급격히 백신 접종 유무로 옮겨가고 있다. 백신 조기 확보에 성공해 접종 속도전까지 벌인 이스라엘, 영국의 상황 변화가 극적이다 보니 접종률 낮은 여러 나라 여기저기서 백신 조바심이 커지며 정치 리더십을 둘러싼 공방이 벌어진다.

접종률이 1%대에 머무는 일본의 스가 총리는 방역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지도력이 없다'를 꼽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 코로나 대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65%에 이른다. 스가가 차기 총리감 6위라니 난처한 수준이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정상회담 차 방문한 미국에서 설익은 화이자 백신 도입 계획을 밝혀 망신을 샀을까.

오는 10월까지 전 국민 백신 접종을 약속했던 호주의 모리슨 총리는 계약량이 많았던 아스트라제네카의 혈전 문제 등으로 접종 계획에 혼선이 생기자 최근 "목표 설정 불가능"을 인정했다. 다른 백신 주문량을 늘렸지만 당장 들어올 리 없어 정치 논란이 벌어지자 "그래도 일본보다 낫다"는 대답밖에 할 말이 없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K방역으로 해외의 부러움을 샀지만 백신 접종률이 4%대로 부진하자 하루가 멀다 하고 정치권이 앞장서고 언론이 부추기는 백신 공방이 이어진다. 접종 꼴찌, 희망고문, 방역 실패 같은 프레임은 거의 기정사실이 됐다. 최근에는 뉴욕타임스나 CNN 등 해외 언론도 한국을 포함한 뉴질랜드, 호주, 일본 등 방역모범국의 늦은 접종을 우려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

초기 코로나 대처 성공에 더해 백신 구입을 서두르고 접종에 속도까지 내는 것이 최선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CNN이 지적하는 것처럼 코로나 피해가 상대적으로 덜했던 방역모범국들이 짧은 기간에 승인된 백신의 부작용 등을 살필 기회를 가졌다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조만간 백신의 효과가 탁월하게 발휘돼 코로나 극복의 지점이 보이겠지만 아직은 종합적으로 백신선진국의 코로나 대응이 더 낫다고 말할 단계도 아니다.

백신접종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은 이스라엘(62%) 영국(50%) 미국(42%)의 최근 일주일간 확진자 숫자는 100만 명당 각각 14, 34, 167명 정도다. 이에 비해 접종률이 공히 5%에도 미치지 못하는 호주, 뉴질랜드, 대만은 모두 1명 미만이고 우리나라는 13명 수준이다. 집단면역에 다가서는 이스라엘은 이제서야 겨우 코로나 피해를 우리 정도로 줄이는데 성공한 셈이다. 사망자 역시 아직은 백신선진국이 방역모범국보다 적게는 수십 배에서 많게는 수백 배까지 많다.

무리해서라도 백신 공급을 서둘렀다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하지만 뒤늦은 대처를 만회하기 위해 정부가 계약에 나서 충분한 공급을 확보했다. 접종률이 앞서가는 나라들이 많아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일 뿐 적어도 아직까지 올해 초 밝힌 접종 계획에 큰 차질도 없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말대로 나라마다 방역의 방정식은 다르다. 철저한 검사와 거리 두기 등 기본 방역의 중요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코로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기승전백신'으로 아우성쳐대는 일부 정치인과 언론의 행태가 방역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묻고 싶다. "백신 무능"이라는 비판은 대량 공급이 예정된 앞으로 몇 달 동안의 결과를 지켜본 뒤 해도 늦지 않다.

김범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