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이 다가온다. 누구는 이날을 ‘근로자의 날’이라 부르고, 누구는 ‘노동절’이라 부른다. 나는 이날을 어떻게 부를지 아직도 난감하다. 현행법에 따르면 근로자의 날이지만 이렇게 부르자니 노동자의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신경 쓰인다. 노동절로 부르자니 좌경의식을 지닌 교사로 오해를 받는 것도 부담스럽다. 차라리 여느 직장인들처럼 하루 쉬면 좋겠는데 학교는 그럴 수도 없는 처지다. 학교만이 아니라 모든 공공기관이 마찬가지다. 법정기념일이지만 공무원에게는 휴무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도 아니고 노동절도 아닌 그저 ‘난감한 날’이다. 뭘 이렇게까지 말하냐고 하겠지만 학교의 속사정은 훨씬 복잡하다.
학교는 해마다 연초에 수업일과 공휴일이 포함된 휴업일을 담아 학사일정을 정한다. 이를 교장이 마음대로 정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여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한다. 이때 5월 1일을 재량휴업일로 정할지 말지를 두고 늘 의견이 분분하다. 휴업일에 대한 결정은 주로 보호자들의 의견에 따르는데 보호자들의 의견도 첨예하게 엇갈린다. 직장이 휴무이면서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보호자는 휴업일로 정하자는 입장이다. 반면에 직장이 휴무가 아니거나 휴무라 하더라도 간만에 홀가분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보호자는 수업일로 정하자는 입장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학교의 일상이다.
그런데 이름 때문에, 휴무 여부 때문에 난감한 국가기념일은 근로자의 날만이 아니다. 교육법 어디에도 없는 말을 붙여 만든 스승의 날도 난감하다. 근로자의 날에 못 쉬었으니 이날 쉬자니 그것도 부담이다. 오죽하면 폐지 청원까지 했을까? 폐지가 어렵다면 보건의 날, 과학의 날처럼 교육의 날로 이름이라도 바꾸자고 했더니 이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다. 부부마다 결혼기념일이 있는데 부부의 날까지 만들어서 국가가 기념하도록 하는 것도 난감하다. 두 사람(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으로 5월 21일로 정한 유래를 보면 헛웃음마저 나온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의미를 짚다보면 난감한 국가기념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너무 많은 국가기념일도 난감하다. 기존 국가기념일은 그대로 둔 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하나둘 늘어나니 현재 시행 중인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이 밝히고 있는 국가기념일은 53개나 된다. 국가기념일의 이름과 주관 부처와 행사 내용을 모두 밝혀야 그 실상을 제대로 알 수 있는데 지면상 다 밝히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다. 아무리 의미가 있는 날이라 하더라도 국가기념일은 많아도 너무 많다. 학교에서 담당 부서별로 추진하는 행사가 많으면 교실 수업은 당연히 부실해진다. 국가기념일이 많을수록 지방자치와 민주사회의 건강한 성장을 방해하는 것도 당연지사다.
마침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바꾸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정부 부처에 노동부가 있는데 노동자를 근로자라 불러야 하는 난감한 상황은 이제라도 바꾸자. 이왕 바꾸는 김에 법정공휴일로 정해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쉬게 하자. 민주시민교육을 강제하려고 법까지 만들려고 애쓸 일 아니다. 민주시민의 날까지 새로 만들어질까 걱정이다. 민주시민을 길러내고 싶다면 난감한 국가기념일부터 정비하자. 기념일마저 국가가 모두 틀어쥐고 있는 상황을 해소할 때 민주시민은 조직된 힘으로 깨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