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①을 골랐을 게다. 맞다. 사실 정답은 ①과 ② 두 개다. 한국 라면(농심 신라면블랙)은 2020년 뉴욕타임스(NYT)의, 인도네시아 라면(인도미 미고렝 바비큐치킨맛)은 2019년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의 전문가 시식 평가에서 각각 1위를 차지했다. '실제 먹었을 때 얼마나 맛있는지'와 '추구하는 맛과 실제 맛의 동질성 수준'이 심사 기준이었다. 국내에선 NYT 순위가 널리 보도됐고, LAT 순위는 한국 라면이 3위(신라면블랙)라는 사실만 부각됐다. 우리나라의 라면 자부심이 그만큼 강하다는 방증이다.
인도네시아도 라면 강국이다. 세계즉석라면협회에 따르면 2019년 연간 라면 소비는 125억2,000만 개로 중국(414억5,000만 개)에 이어 세계 2위다. 우리나라는 7위(39억1,000만 개)다. 물론 인구 수를 감안한 1인당 소비는 75.6개인 우리나라가 압도적 1위다. 라면이 처음 시판된 시점도 우리나라(1963년)가 인도네시아(1968년)보다 5년 이르다.
라면 생산은 인도네시아가 단연 앞선다. 세계 최대 라면생산업체가 있고, 미국 유럽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등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에 수출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터키 등에선 라면시장의 70~90%를 장악하고 있다. 세계인을 사로잡는 특유의 맛과 20억 무슬림이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할랄(이슬람 율법이 허용한)' 음식이란 점이 인기 비결이다. 인도네시아 대표 라면들을 살펴본다.
인도미(indomie)는 인도네시아와 면(mi 또는 mie)의 합성어다. 고유명사인 제품명이 인도네시아 라면을 일컫는 보통명사로 불릴 만큼 인기가 높다. 40년 가까이 인도네시아 라면시장의 7할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1971년 현지인에게 익숙한 '닭 육수'맛을 내놓은 게 시작이다. 일본의 도움으로 1968년 시판된 인도네시아 첫 라면 '슈퍼미'보다 늦었으나 1982년 공전의 히트 상품인 '미고렝(볶음면)'을 선보이면서 인도미는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인도네시아인들은 국물라면보다 볶음라면을 선호한다. 초창기 라면 삼국지를 펼친 인도미, 슈퍼미, 사리미('면의 핵심'이라는 뜻ㆍ1982년 출시)는 결국 1986년 하나의 회사(㈜인도푸드)로 합쳐져 '라면 통일'을 이룬다.
인도푸드는 연간 190억 봉지의 인도미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의 5년치 라면 소비량과 맞먹는다. 세계 최대 생산업체다. 라면 종주국인 일본의 닛신은 그다음이다. 지난해 수익이 전년보다 31% 늘었을 정도로 성장세다. 맛의 종류는 수십 개가 넘는다. 나이지리아엔 인도미 팬클럽(IFC)도 있다. 자국의 쌀 부족을 해소하려고 반신반의하며 내놓은 라면이 전 세계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LAT는 "매일 먹을 수 있고 또 매일 먹을 것"이라고 인도미 미고렝 바비큐치킨맛에 헌사했다.
1948년 두 남자가 동부자바주(州) 수라바야 집 뒷마당에서 빨랫비누를 만들어 팔았다. 독립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집집마다, 마을마다, 노점마다 비누를 팔았다. 성공에 힘입어 크림세제도 만들었다. 기존 제품보다 훨씬 싼데 세정력은 뛰어난 두 남자의 세제는 지역을 넘어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사랑을 받았다. 카투아리씨와 수탄토씨는 "날개 한 쌍처럼 동일한 가치와 포부를 공유한다"는 뜻을 담아 ㈜윙스푸드를 설립했다.
윙스푸드는 2003년 라면 '미스다압(mie sedaap)'을 출시했다. 라면시장을 이미 평정한 인도미에 32년 만에 도전장을 낸 것이다. 맛있는(sedap)에 'a'를 하나 더 추가한 형태라 '더 맛있는 라면' 정도로 풀이하면 된다. 바삭바삭한 맛을 앞세운 10여 년의 노력 끝에 현재 라면시장 점유율 2위(15~17%)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2019년엔 '대한민국 매운 닭갈비'맛을 선보이며 한류 스타 슈퍼니주니어 최시원을 광고모델로 내세웠다. 인도네시아 라면 광고에 처음 등장한 한국 모델은 일대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20대 청춘 세 명이 설립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2017년 출시한 레모닐로(lemonilo)는 건강한 라면을 꿈꾼다. 이름은 건강을 상징하는 '레몬'과 전사(戰士)를 뜻하는 켈트어 '닐로'에서 따왔다. 카사바와 밀가루, 유기농 시금치, 심황, 셀러리, 소금 등 천연 재료를 사용한다. 면은 튀기지 않고 오븐에서 익힌 뒤 말린다. 방부제, 향료, 인공색소, 화학조미료(MSG)를 일절 쓰지 않는다고 광고한다. 한류 효과에 영감을 받은 '한국 매운'맛 볶음면도 내놓았다.
건강에 대한 관심 덕에 레모닐로는 최근 각광받는 라면으로 부상했다. 다른 국산 라면보다 3배 가까이 비싼 데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라면뿐 아니라 다양한 건강 식품과 간식을 만들면서 투자자들의 자금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고급 라면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면서 인도네시아 내 한국 라면 점유율을 잠식하는 분위기다.
인도네시아 청춘들은 우리나라 분식집과 카페가 섞인 형태의 '와룽 압노르말(warunk upnormal·보통 이상의 가게라는 뜻)'에서 인도미 외식을 한다. 가격은 1만5,000~2만 루피아(약 1,200~1,600원) 정도로 직접 끓여먹을 때보다 비싸지만 고기와 계란, 채소 등 다양한 재료를 추가해 준다. 와룽 압노르말은 2014년 생긴 연쇄점으로 젊은이들의 아지트다. 파투루(25)씨는 "요리가 맛있고 무료 인터넷과 에어컨이 있는데다 콘센트도 많아 모임을 하거나 공부하기에 편하다"고 했다. 서민들은 실내 포장마차처럼 생긴 '와룽 트갈(warung tegal·또는 와르텍)'을 주로 이용한다. 우리 돈 700원가량이면 인도미를 뚝딱 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