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올해 기숙형 사립자율고등학교에 입학한 딸 때문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우수한 아이들이 모인 학교지만 딸은 입사하고 지금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수십 번씩 ‘집에 가고 싶다’ ‘공부가 안 된다’ ‘포기하고 싶다’ ‘탈출하고 싶다’ 등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제 딸은 어렸을 때부터 감정 표현을 많이 하지 않았어요. 제가 뭐라고 하면 억울한 눈빛으로 말 없이 울면서 쳐다보기만 했죠. 저희 부부가 다 내향적이어서도 그렇지만 아이가 어렸을 때 저희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너무 바빠 아이를 잘 돌봐주지 못했어요. 사랑을 잘 표현하지 않았고, 안아주거나 스킨십을 하지도 않았어요. 대화도 별로 없었고요. 당시 아이의 사진을 보면 늘 무표정합니다.
아이는 지인들의 아이들과 함께 다른 집에서 지낼 때도 있었어요. 아이가 일곱 살 때는 폐업하면서 남편과 헤어졌고, 저와 아이는 친정 집에 들어갔어요. 그때부터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돌봐주었어요. 아이 외할머니는 성격은 밝으나 차갑고 아이에게 생기는 사소한 문제도 본인이 바로 해결해서 처리해주는 분이셨어요. 저는 취업해서 매일 늦었고요. 그러자 아이는 매일 울고, 손톱과 입술을 물어뜯고, 이유도 없이 자주 아프다고 했어요. 아이가 초등3학년 때 남편과 재결합했어요.
딸은 걱정이 많습니다. 항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해요. 얼마 전에는 “엄마 죽으면 나 혼자 어떻게 살아”라고 진지하게 묻기도 하고 “초콜릿 많이 먹어서 당뇨에 걸릴 것 같아”라는 얘기도 심각하게 하고요. 사소한 것도 선택하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늘 사소한 것도 묻지만 답은 늘 정해져 있어요.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엄청 싫어해요.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활동도 힘들어하고, 학교에서 발표할 때도 많이 떠는 편입니다. 최근에 학교에서 4주 후에 발표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전에 탈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딸은 초등학교 때 준영재 판정을 받았고, 올 초 지능지수(IQ) 검사에서 상위 3%를 받을 만큼 똑똑해요. 하지만 자기 학교에는 다 천재들만 있어서 준영재는 아무것도 아니고, 상위 1~2%인 애들도 수천 명이 넘을 거라고 합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험을 치면 9등급이 나올 것 같다고 걱정하던 아이입니다. 기숙학교에 갈 때도 딸이 태어나고 자란 동네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해서 추천했었어요.
딸이 친구가 없진 않은 것 같은데 딸은 학교에서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다 어색하다고 해요. 친구들과 대화도 안 통하고 같이 노는 게 재미없고, 애들 대화에 맞춰 재미있는 척하는 것도 힘들고 그냥 누군가와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다고 해요. 자기에게 다가오는 친구가 있으면 의심부터 든다고 합니다. 사실 딸은 친구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어색하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아빠까지도요. 어른을 대할 때는 심지어 같이 산 조부모님, 이모도 긴장이 된다고 해요.
계속 자퇴를 하고 싶어해서 저는 딸에게 힘들면 나와도 되지만 일단 적응하려는 노력을 해본 다음에 나오자고 말했어요. 하지만 남편은 “자퇴하면 앞으로 사회 나가서 그 편견을 어떻게 감당할 거냐”라며 “시간이 지나면 적응할 거야”라고 합니다. 제가 어떻게 도와야할지 모르겠고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아이가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커갔으면 좋겠어요. 도와주세요.
최경민(가명ㆍ47ㆍ주부)
경민씨, 자녀를 한번 낳으면 설사 성인이 되더라도 부모는 자신의 삶을 다할 때까지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기 마련입니다. 어깨가 무겁다는 의미보다는 그만큼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소중하고 끈끈하다는 거지요. 그런 자녀가 힘든 것을 옆에서 봤을 때 부모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프지요. 대신 겪어주고 싶을 만큼 안쓰럽고, 그러면서 자녀가 힘든 게 내 탓 같은 후회가 밀려들죠. 미안하고 걱정스럽고 불안하고 가슴을 저미듯 아픕니다. 하나라도 놓칠까 상세하게 방대한 사연을 보낸 당신의 절실한 마음을 저는 깊이 이해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부모가 있을까요. 자식을 깊고 따뜻하게 사랑하고 진심으로 잘 키우고 싶지만 부모도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기에 실수도 하고 사랑을 잘못된 방향으로 휘두르는 과오도 저지르지요. 그리고 가슴 사무치게 후회도 하지요. 그래서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아파할 때는 다 부모 탓 같지요. 그러나 자식의 문제가 다 부모 탓은 아닙니다. 다만 부모는 자식에게 너무 중요한 대상이고 영향을 많이 끼치는 사람이기 때문에, 여전히 자녀를 사랑하고 성장시켜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녀가 아파할 때는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잘 이끌어주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부모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지요. 부모 탓이라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에게 끼친 영향을 잘 살펴봐야 한다는 말이지요. 아이의 인생에서 부모를 비롯한 중요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경험한 것들이 아이의 성격이나 대인관계, 문제 해결 방식에 영향을 줬기 때문이에요. 문제의 원인을 잘 파악하고 잘 이끌었을 때 가장 많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도 다름 아닌 부모라는 점을 꼭 명심하세요.
제가 경민씨의 딸을 완벽하게 파악할 순 없겠지만, 우선 딸이 처한 어려움을 살펴봐야 할 것 같아요. 딸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게 불편한 것 같아요. 사람을 좋고 싫어하는 문제가 아니라 누구와도 대체로 함께 있으면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때 편하고,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고, 사람들과 같이 얘기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겁지 않은 거예요. 새로운 환경에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이 불안하고 긴장합니다. 이 불안과 긴장을 자기 스스로 좀 편안하게 진정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고, 불편한 감정들이 오래 지속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마치 매일 시험을 보는 것 같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지만 사람들에 둘러싸여 혼나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마치 눈 앞에 맹수들이 왔다갔다 하는 것처럼요.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아도 본인이 그렇게 느끼는 거예요.
딸은 왜 그렇게 느낄까요. 원만한 대인관계 능력은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때 재미있고 좋았다는 경험에서 자라나지요. 다른 사람이 반가우려면 생애 처음 만난 타인인 부모가 반갑고 좋아야 합니다. 부모에게 요구했더니 부모가 잘 들어주고 힘든 것을 편안하게 해결해 준 경험, 부모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요구를 다 들어주지는 못했지만 부모에게 서운한 마음을 위로 받고 마음이 편안해졌던 경험에서 원만한 대인관계 능력이 생깁니다. 또한 부모는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반기게 되는지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마음이 힘들어서 위로를 받으러 다가갔는데 부모에게서 반응이 없거나 냉정하고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이거나 심지어 화를 내거나 때린다면 아이는 어떨까요. 아이는 당황하고 혼란에 빠집니다. 어떤 부모는 성격이 너무 무덤덤해서 아이가 우는데도 눈치 채지 못하기도 해요. ‘애는 혼자서 크는 거지 부모가 뭘 그렇게 해줘야 하냐’라든가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부모가 일일이 챙겨줘야 하냐’라는 식으로 아이를 키우기도 하고요. 부모를 찾아 위안과 안정을 찾으려고 아이가 자꾸 엄마를 부르면 “왜 자꾸 부르고 야단이야, 엄마 안죽었어” 하거나 “혼자 좀 놀아, 시끄러워 죽겠네” 하기도 하죠. 예의 바른 아이로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엄하게 키우면서 응석을 받아주지 않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이럴 때 아이는 어떨까요. 아이는 신호를 보내고 부모에게 안아달라고 하다가 부모의 행동과 반응에 절망하게 되고, 더 이상 요구하지 않고 포기하게 되고, 결국 다가가지 않고 혼자 놀면서 사람을 피하게 되지요. 이렇게 두렵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지속적으로 경험을 하면 커서도 대인관계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경민씨의 딸도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 차라리 혼자 있는 게 편하도록 성격이 형성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딸은 불러도 대답해줄 부모가 없었던 경우에 해당이 되는 것 같습니다.
바쁜 부모가 늘 집에 없었고 불안감을 느낄 때 제대로 위로해줄 사람이 없었고 늘 외로움과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자랐다면,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친밀한 감정을 어떻게 드러내야할지 모르겠지요. 그런 감정을 제대로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커서도 다른 사람과 같이 있고 싶어도 가까이 가지 못하는 성격이 되는 거지요. 부모와의 감정적인 연결이 견고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의 감정적 연결도 차단되어 있지요. 딸은 자신의 정서와 감정을 무시하거나 차단해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없을 때는 대체로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지만, 일단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이를 귀찮아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회피하려 들고 도망치려고 하는 거 같아요. 딸은 똑똑하고 나이에 비해서 조숙해 보이겠지요. 부모에게 힘든 것을 의논하지 않고 힘든 감정 표현도 잘 하지 않으니 겉으로 보기에는 독립심이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두렵고 불안하고 자신의 마음을 잘 몰라주는 부모에게 화가 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화를 내봤자 반응이 없고 ‘네가 알아서 잘 해야 하지 않겠니’ 라든가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거다’고 하니 서운함과 화, 절망과 분노, 불안과 두려움에 어쩔 줄 몰라 하고 혼자서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거지요.
아이와의 정서적 상호작용도 매우 중요해요. 많은 부모들이 경민씨 부부처럼 ‘감정’을 ‘생각’으로 이해하곤 해요. 인지와 정서는 다릅니다. 생각은 인지적 영역이고, 마음과 감정은 정서적 영역이에요. 부모들은 아이에게 인지적으로 설명하면 아이가 이해하고 납득을 해서 마음도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아이가 화를 낼 때 '왜 화가 났어'라고 화난 이유를 생각해보라는 건 생각이고, 화는 마음이라는 감정이에요. 애들이 '엄마 나는 공부가 싫어요'라고 하면 싫다는 건 마음이에요. 그런데 부모들은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해줄게'라고 해요. 이건 인지적으로 접근하는 거죠. 머리로 알아도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많지요. 경민씨 부부도 아이의 마음에 다가가기보다는 늘 인지적으로 대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아이의 힘든 마음을 인지적으로 설명해서 아이가 알아들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아이가 인지적으로는 매우 우수하고 아무 문제가 없지만, 정서적으로는 매우 힘든 상황일 겁니다.
자퇴를 했을 때 사회적인 편견에 시달릴 것이라는 걱정 또한 매우 인지적인, 지극히 부모의 기준에서 아이를 보는 거예요. 고려해봐야 하는 점이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정서적인 기반이 취약한 아이를 보다 편안하게 해주는 겁니다. 그게 아이의 입장에서 부모가 도와줘야 할 일이지요.
끊임없이 아이가 ‘자퇴하고 싶다’고 하는 것은 부모에게 보내는 긴급한 신호예요.딸에게 자퇴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거나, 부모가 실망한다는 표현을 하기보다 '학교도 중요하지만, 학교보다 우리는 네가 더 중요해. 공부는 꾸준히 해야 하는 거지만, 그리고 대체로 학교를 다니는 방법으로 배우지만 그 방법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야, 다른 방식도 많아. 네가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해줘야 합니다.
딸에게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은 지나치게 높은 불안을 낮추는 거예요. 아이가 9등급을 받을까 봐 걱정하고, 발표를 못할까 봐 미리 걱정하는 것은 모두 불안해서예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전전긍긍하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과도하게 신경을 쓰는 것 또한 불안의 한 종류입니다. 현재 딸은 굉장히 다양한 형태의 불안 증상들이 있어요. 딸을 그릇에 비유하면 좋은 그릇이지만 금이 잘 가는 그릇이에요. 그릇 안에 새로운 걸 담고, 그릇 안에 있는 걸 꺼내서 일상에 적용하고 그래야 하는데 금이 잘 가서 그런 것들이 어려운 그릇인 거죠. 제가 보기에 딸은 전문의와의 치료가 필요합니다. 상담과 필요하다면 약물 처방 등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부모가 가장 중요하고 가장 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람이지요.
무조건 자퇴하고 집에 있는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고, 경민씨 남편의 말처럼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해결될 문제는 더더욱 아닙니다. 지금은 이러한 양상으로 불안이 나타나지만, 좋아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형태로 문제가 드러날 수 있습니다.
경민씨, 불안은 정서의 영역이고, 사람관계는 사회성의 발달이에요. 정서와 사회성의 발달은 후천적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딸의 어려움은 부모의 사랑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딸의 사람 됨됨이의 문제도 아니에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부모가 노력해서 변화된 모습으로 아이를 도와주면 딸이 편안하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길로 갈 수 있을 거예요. 딸에 대한 경민씨 부부의 깊고 따뜻한 사랑을 응원하며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이 시대의 모든 ‘부모’들에게 머리 숙여 존경을 보냅니다.
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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