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잠수함 사고

입력
2021.04.23 18:00
22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수송 수단 가운데서도 잠수함의 성격은 다소 특별한 측면이 있다. 대부분의 운송 수단이 이동 시간을 단축하려는 인간의 욕구에서 출발해 상업적인 이유로 개발이 촉진된 반면, 잠수함은 출발부터 군사적인 목적이 강했다. 잠수함 구상을 진전시킨 발명가는 18세기 증기선 개발로 유명한 미국의 로버트 풀턴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노틸러스 잠수함을 만들어 영국과 전쟁 중이던 프랑스에 팔려고 했지만 나폴레옹의 흥미를 끌지 못해 전력화에 실패했다.

□ 하지만 그러고 100년이 안 돼 잠수함은 해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략 무기가 됐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은 지금과 비교하면 초보적인 잠수함 U보트로 영국 해군을 궁지에 몰아 넣었다. 미국의 참전을 부른 악수였지만 U보트를 이용한 연합국 상선 격침 성과는 상상을 넘어섰다. 독일은 이어진 2차 세계대전에서도 잠수함의 효과를 보았고, 미국이 일본과의 해전에서 승기를 잡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뒤로도 잠수함 기술 개발이나 운용은 군사 목적이 지배적이었다.

□ 그러다 보니 관련 사고도 군사 훈련이나 작전 과정에서 일어난다. 심해 공간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사고는 거의 탑승자 전원이 숨지는 대형 재난이다. 인명 피해로 역대 최악의 사고는 1942년 카리브해에서 미국 화물선과 충돌해 130명이 숨진 프랑스 잠수함 쉬르쿠프의 침몰이었다. 1963년 기관실 침수로 가라앉은 미국 핵잠수함 스레셔에서도 129명이 숨졌다. 118명이 숨진 2000년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 침몰 때는 푸틴 정부의 부실 대응이 논란을 샀다.

□ 인도네시아 잠수함 낭길라가 지난 21일 발리섬 인근 해역에서 실종됐다. 잠수 가능 깊이가 200m인데 마지막 신호가 600~700m 해저에서 잡혔다니 53명 탑승자의 안전을 기대하긴 무리다. 이 독일제 구형 잠수함은 대우조선해양에서 10년 전 수리한 인연이 있다. 인도네시아는 우리 장보고급 잠수함과 T-50 고등훈련기를 도입했고,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도 참여하는 군사협력국이다. 낭길라 구조 작업에 어느 나라보다 적극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