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어떻게 알았지?” 소셜미디어(SNS) 사용자라면 게시글 사이 중간중간 뜨는 ‘맞춤형 광고’에 한 번씩 놀라본 경험이 있을 거다. 내 머리 속에 들어갔다 온 것처럼 원하는 품목만 쏙쏙 띄워주는 게 신기하다가도, 누가 나를 꿰뚫어 보나 싶어 께름칙한 기분이 들기 마련. 독심술을 부리는 능력자는 알고리즘이다. 성별·나이·주소· 직장·결혼 여부 등 민감한 개인 정보는 물론 검색어 기록, 방문 사이트 이력, SNS 구독채널과 광고 영상 클릭 여부, 머무는 시간까지 종합 수집해 나의 경험과 취향을 고려한 밥상을 차려 숟가락으로 떠주니 혹할 수밖에. 어떤 이들은 필요한 정보를 시간 절약하며 얻을 수 있으니 좋은 거 아니냐고 편을 들 수도 있겠지만, 과연 이 책을 읽고도 그런 말이 쉽게 나올까.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하버드 경영대학의 명예교수인 쇼샤나 주보프의 ‘감시자본주의의 시대(The Age of Surveillance Capitalism)’가 미국에서 출간된 지 2년 만에 번역돼 나왔다. 주보프는 이 책에서 인간의 경험을 공짜로 원자재 삼아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수익을 내는 경제를 가리켜 ‘감시 자본주의’란 말을 처음 만들었다. 디지털 자본의 은밀한 수탈 과정과 수익 창출 원리를 구조적으로 규명해냈다는 점에서 출간 당시부터 21세기 ‘자본론’이란 찬사가 학계와 언론에서 쏟아졌는데, 깊은 통찰만큼이나 흡인력 있는 문장의 매력도 크다.
감시 자본주의의 핵심은 잉여 행동 데이터를 얼마나 대량으로 수집하느냐에 달려 있다. 기존 상품과 서비스를 개선하는 목적을 넘어 닥치는 대로 감시의 덫을 깔아 놓고 수많은 클릭, 검색, 위치 기록 등을 이용해 우리의 내면과 본성을 ‘채굴’하는 게 첫 번째 작업. 그렇게 긁어모은 디지털 발자국을 기업에 팔아넘겨 우리가 지금, 그리고 미래에 무엇을 할지 예측하는 상품을 만들어내 수익을 얻는 구조다. 감시자본주의의 선구자인 구글을 시작으로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의 실리콘 제국은 이렇게 완성됐다.
문제는 수탈을 넘어선 말살이다. 단순히 정보를 교묘히 빼내는 걸 넘어 미래 시점에서 우리의 행동을 유도하고 통제하고, 조종하고, 조건화하는 '도구주의 권력'의 등장이다. 산업 자본주의가 자연과 노동을 착취했다면, 감시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성을 뜯어내고 탈취해간다. 예측 가능한 사이클에서 우리는 주체성을 잃어버린 채 타인의 이익을 위해 이용당하는 꼭두각시로 전락하고야 만다. 구글을 검색하던 주체에서 검색 대상이 돼버리고, 오늘의 ‘좋아요’가 내일의 ‘좋아요’를 옭아매는 역설이다.
이는 비단 경제 영역에만 그치지 않는다. 주체로서의 생명을 잃은 개인들이 많아질수록 민주주의의 뿌리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감시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건, ‘극단적 무관심’이다. 주보프는 극단적 관심으로 타인을 세뇌하고 강제하려 했던 ‘빅브러더’와 반대로, 감시 자본주의는 인간을 ‘타자화’한다는 점에서 ‘빅아더(Big Other)’라고 비유한다. 그러면서 제6의 멸종(인류의 멸종을 말함)보다 더 끔찍하다는 점에서 ‘제7의 멸종’(인간 본성의 절멸을 말함)이라고까지 표현한다.
감시 자본주의가 이토록 흥한 데는 빅테크 기업과 공조해온 정치권력의 든든한 뒷배도 있었다. 저자는 워싱턴과 실리콘밸리 사이의 회전문 인사를 꼬집으며, 감시 자본가들과 정치 권력자들의 공생을 폭로한다. 정부의 기업 규제를 압제로 규정하는 신자유주의 물결, 9·11 테러 이후 강화된 정부의 감시 권력은 시대적 호재였다. 지식과 권력의 비대칭성도 문제다. 구글 등 빅테크 기업의 리더들은 디지털 기술과 자본이 인류의 미래를 유토피아로 만들어줄 거라고 틈만 나면 디지털 복음주의를 설파하고 있지만, 정작 내부 운영 원리에 대해선 철저하게 비밀주의를 고집한다.
감시 자본주의는 인간을 향한 쿠데타이다. ‘누가 아는가? 누가 결정하는가? 누가 결정하는지를 누가 결정하는가?’ 문명의 질서를 지탱하는 이 핵심 질문 앞에서 우리 개인과 사회는 어떤 답을 할 수 있느냐고 주보프는 되묻는다. 결국 디지털 자본의 쿠데타를 저지하는 힘은 인간에게서 나온다. 디지털 세상이 우리의 미래라면, 그 미래를 만드는 주체는 인간이 돼야 한다. 산업 자본주의의 착취 대상은 자연이었지만, 감시 자본주의의 희생양은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간이란 게 그나마 다행스럽다. 당장 이 책을 읽고 우리의 본성을 지킬 권리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부터 저항의 시작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