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기 소송 '갑질 BHC' 이겼지만… 가맹점주 '상처 투성이'

입력
2021.04.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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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C 해바라기유 의혹 등 공정위 신고하자
계약 해지·10억 소송·형사고소 무차별 공격
승소했지만 빚더미… 법적 괴로힘도 이어져
상생 제스처도 공정위 심사 '위장 전술' 의심

치킨프랜차이즈업체 BHC의 전국가맹점협의회장인 진정호씨는 지난 16일 울산 남구에 자리 잡은 자신의 BHC 가맹점 문을 다시 열었다. 162일만에 다시 들어선 매장 내부는 배달 오토바이만 놓여 있을 뿐 장사한 흔적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매장 입구엔 소상공인 대출 전단지와 각종 고지서만 수북이 쌓여 있었다. 진씨는 “지난해 11월 6일 BHC 본사가 가맹계약 해지로 물품 공급을 중단한 뒤로는 유통기한 지난 물품을 처분하러 가끔 매장을 들른 게 전부였다"고 밝혔다.

진씨는 지난 2년 동안 '악질' 프랜차이즈업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가맹점주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갑질을 경험했다. BHC가 가맹점주와의 상생협약에 앞장선 '진정호 죽이기'를 위해 선택한 첫 조치는 가맹계약 즉시 해지 통보였다. 진씨가 2019년 4월 11일 가맹점협의회 이름으로 "BHC 고올레산 해바라기유 함량 의혹 등을 밝혀달라"며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신고하자, 본사 신용을 떨어뜨렸다며 다음날 계약을 해지한 것이다.

진씨는 BHC의 갑질에 대응하려고 법원에 가맹계약 즉시 해지가 부당하다며 '지위보전가처분'을 신청했다. 가맹점주 수백명과 함께 공정위에 신고한 △점포환경개선 강요 △신선육 구매강제 △고올레산 해바라기유 구입 강제 △점주 보복조치 △광고비 집행내역 미공개는 결코 허위사실이 아니라는 게 진씨 주장이다. 진씨는 "공정위에 신고한 다음날 BHC 본사가 가맹계약 즉시 해지를 통보한 것은 사실상 가맹점협의회에 대한 재갈물리기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BHC의 '진정호 죽이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법원에서 진씨의 '지위보전가처분' 신청이 인용되자, BHC는 지난해 11월 6일 또다시 진씨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한 것이다. 진씨의 소송대리인인 이주한 변호사는 "BHC의 반복적인 계약해지 통보는 재판부의 결정 취지를 무색케하는 악질적 수법"이라고 말했다.

진씨는 처음엔 의지로 버텼지만, 끝도 없이 쏟아지는 소송공세에 좌절과 고통이 쌓여갔다. 연거푸 계약해지를 통보받은 진씨는 장기간 생계가 막혀 결국 수천만 원을 대출받기도 했다. 진씨가 본사와 가맹점주간 상생협약에 앞장섰다가 계약해지를 당한 전국 각지의 BHC 집행부 인사들을 만나러 다닌 것도 불안한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진씨는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우울증이 걸리는 등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강릉, 용인, 광주에 있는 집행부 인사들과 만났다”고 말했다. 다행히 BHC의 계약해지 조치를 무효로 해달라며 진씨가 제기한 가처분 소송이 법원에서 재차 받아들여져, 진씨는 지난 16일 매장 문을 다시 열게 된 것이다.


진씨에게 4월 16일은 수년간 자신을 옥죄던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난 날이기도 하다. BHC가 상생을 약속했던 진씨에게 브랜드 가치 하락을 이유로 10억원을 청구했던 민사소송이 법원의 화해권고결정으로 종결됐기 때문이다. 법원 결정문에 따르면 BHC는 손해배상청구를 포기하고, 소송비용도 전액 부담하도록 했다.

일방적 계약해지 통보로 문을 닫게 하고 상식 밖의 거액 배상 청구도 모자라, BHC는 진씨를 상대로 형사고소까지 제기했다. 그러나 BHC가 2019년 6월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진씨를 고소한 사건도 무혐의 처분이 확정되면서, 진씨는 BHC와의 법적 공방에서 모두 이겼다. 진씨와 함께 가맹점협의회 활동을 했던 A씨는 "2019년 8월 진씨를 제외한 가맹점주 6명이 BHC로부터 무더기 계약해지 통보를 받을 당시 진씨는 모친 상중에 있었다"면서 "상중에도 진씨가 가맹점주들과 대책을 마련하는 것을 보고 상당히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거대 프랜차이즈업체가 '패소할 것을 알면서도' 영세 가맹점주에게 민·형사 소송을 남발하는 것은 '최고의 갑질'로 꼽힌다. 이주한 변호사는 “마음에 들지 않는 가맹점주가 있다면 가맹본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밟아 없애버릴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진씨는 BHC의 물품공급 거절로 장기간 영업을 못하게 되면서 생활고까지 덮쳤다"고 밝혔다.

BHC는 소송에선 졌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가맹점협의회 회원들은 △상생협약에 앞장선 협의회 집행부에 대한 BHC의 계약해지 통보 △진씨를 상대로 10억원 소송 등 가맹점주에 대한 무차별 송사를 지켜보면서 협의회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BHC 가맹점협의회 회원 명부를 보면, 2018년 가입 당시만 해도 자발적으로 회비를 냈던 회원이 600명이 넘었지만 현재는 10명도 되지 않는다. 협의회에서 탈퇴한 한 가맹점주는 "진씨와 집행부에게 소송을 남발하는 BHC 행태를 보고 '나도 잘못될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생겼다"며 "뜻을 같이했던 사람들을 뒤로 하고 이탈한 것에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수년간 '진정호 죽이기'에 나섰던 BHC는 최근 법원에 화해권고를 요청하는 등 갑자기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런 모습을 두고 이달 30일 예정된 BHC 가맹사업법 위반행위에 대한 공정위 심의를 의식한 '위장 전술'이란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BHC는 진씨에게 각종 소송과 계약해지 통보를 취하면서도 합의를 종용하기도 했다. 진씨와의 합의를 통해 가맹점주와 상생하고 있다는 모양새를 취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수년간 영세 가맹점주에게 가해진 거대 치킨프랜차이즈 업체의 횡포에 진씨는 "BHC의 소송에 상생협약을 목표했던 가맹점협의회가 한순간에 와해되는 것을 보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면서 "겉으론 상생하겠다면서 뒤로는 가맹점주 생계를 위협하는 BHC에 대해 공정위가 엄격한 판단을 내리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BHC는 "법원의 화해권고결정은 받아들였지만, (진정호씨가 승소한) 가처분 결정에 대해선 항고하겠다"고 말했다.


울산=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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