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저녁 때 근무를 나갔다가 초소 옆 두 개미집에 전쟁이 붙은 것을 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영화 ‘반지의 제왕’ 전투 신이 따로 없을 만큼 스펙터클했다. 그래봤자 개미들. 철없는 초딩이 가다가 보았다면 마구 밟아 몇 분 안에 끝내버렸을 것이다. 새벽에 다시 초소에 갔다가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한쪽 집이 이긴 것 같은데, 다른 쪽 집에 가서는 하얀 알을 입에 물고 줄줄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땅에서 아주 작으면서도 가장 지혜로운 것이 넷이 있으니”(30:24) 작고 약하다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고 잠언의 어느 구절은 시작한다. “곧 힘이 없는 종류이지만 먹을 것을 여름에 예비하는 개미와, 약한 종류이지만 바위 틈에 자기 집을 짓는 오소리와, 임금은 없으나 떼를 지어 함께 나아가는 메뚜기와, 사람의 손에 잡힐 것 같은데도 왕궁을 드나드는 도마뱀이다.”(25-28)
운전하다가 지나가는 개라도 치어 죽게 하면 그 후유증과 죄책감, 트라우마가 꽤 오래갈 것이다. 몸 크기는 매우 달라도 똑같은 하나의 생명인데, 테이블 위에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는 아무 생각도 없이 손가락으로 꾹 눌러 죽이기도 한다. ‘개미 같은’은 천하에 제일 하찮은 것에 붙이는 아주 적절한 형용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학적 관찰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개미는 꽤 체계적인 조직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곤충이다. 왕족과 노동계급, 그리고 군사 조직도 있어서 개보다는 훨씬 더 절묘한 사회생활을 할 줄 알고 미래도 대비할 줄 아는 영물이다. 심지어 서로 여왕이 되기 위해 기존의 여왕개미를 지키는 경비 개미들에게 뇌물도 준단다. 베르베르의 명작 '개미'를 읽어보고 감탄해 보시기 바란다.
나중에 그 개미들의 놀라운 광경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더 놀랐다. 이긴 개미집이 진 개미집에서 알을 가져다가 먹어 치우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키워서 노예를 만든다고 한다. 그 먼지만 한 두뇌에 뭐가 있겠냐고 무시하겠지만 그들은 사회 계급도 만들고, 몰라서 그렇지 국정원도 있을지 모르겠다.
위 구절에는 오소리도 등장한다. 과잉행동장애가 있을 법한 녀석이지만, 자기 집은 놀랄 정도로 잘 정돈한다고 한다. 댁의 책상보다 더 깨끗할 수도. 메뚜기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우리네 논밭에서 보는 폴짝거리는 녀석이 아니다.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 떼로 날아다니면서 하늘을 뒤덮는, 그야말로 공포의 군대다. 한번 몰려와 지나가고 나면 푸른색은 남아 있는 게 없다고 한다. 왕궁을 드나드는 도마뱀. 어떤 것도 통과할 수 없도록 병사가 창을 들고 눈을 부릅뜨고 지키지만, 도마뱀은 그 다리 사이로 손흥민의 골키퍼 농락 알까기 슛처럼 휙 지나가 버린다.
곧이어 잠언은 작은 것과는 다르게 위풍당당하고 강한 것 넷을 소개한다. “곧 짐승 가운데서 가장 강하여,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사자와, 자랑스럽게 걷는 사냥개와, 숫염소와, 아무도 맞설 수 없는 임금이다.”(31-32) 임금에 대한 편견은 미안하지만, 성질만 뻗쳤다 하면 이 4가지는 무력으로 남을 제압하기 일쑤다.
위에서 잠언은 작아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강한 것들을 열거하고 나서는 곧이어 이런 말을 남긴다. “네가 어리석어서 우쭐댔거나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너의 손으로 입을 막고 반성하여 보아라. 우유를 저으면 굳은 우유가 되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오듯, 화를 돋우면 분쟁이 일어난다.”(32-33) 힘과 무력이 있다고 우쭐하는 것들 때문에 이 세상은 어지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