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샤넬, 씨티그룹 등 대기업 및 외국기업 임원 출신들이 신생기업(스타트업)으로 속속 자리를 옮기고 있다. 과거 중소기업에서 대기업 이직을 꿈꾸듯 이제는 대기업에서 스타트업 이직을 선망하는 세상이 됐다. 업계에서는 한마디로 ‘스타트업의 위상이 달라졌다’고 본다.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스타트업들이 대기업이나 외국기업에서 조직 관리나 대외업무 경험이 풍부한 임원들을 속속 영입하고 있다. 특히 고속 성장하며 급속도로 인력이 늘고 대외업무가 활발한 스타트업들이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대기업, 외국기업 임원 출신들을 뽑고 있다. 역사가 짧은 스타트업들은 이들의 경험과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대기업 출신들은 스타트업에서 ‘제2의 쿠팡’ 같은 성공 신화를 꿈꾸는 것이다.
인공지능(AI) 개발업체 알체라는 37년간 삼성에서 일한 ‘삼성맨’ 윤호석 전 호텔신라 전무를 최고운영책임자(COO)로 뽑았다. 윤 COO는 삼성전자, 삼성SDS를 거쳐 호텔신라에서 면세사업 개발업무 등을 담당했으며 HDC신라면세점 경영고문을 지냈다. 삼성 시절부터 쌓인 근무습관 때문에 지금도 새벽 6시 30분에 출근하는 그는 “젊은 직원들이 서로를 ‘님’으로 부르며 평등하게 일하는 모습에서 많이 배운다”며 “관리자가 아닌 선배로서 호흡을 같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희 전 부방그룹 부회장도 공유 킥보드 ‘씽씽’으로 유명한 스타트업 피유엠피의 부대표 겸 최고구매책임자로 지난달 합류했다. 부방그룹 주력사인 쿠첸 대표와 지주사 부회장으로 일했던 그는 피유엠피의 경영 전반에 참여하며 중국 킥보드 제조업체 등 공급망 관리를 총괄한다.
세계 최초로 바나듐 이온 배터리를 개발한 스타트업 스탠다드에너지는 이승철 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부회장을 올해 초 전략기획부문장(CSO)으로 영입했다. 이 부문장은 재계 대표단체였던 전경련에서 실무를 총괄했던 경험을 살려 김부기 스탠다드에너지 대표에게 경영 컨설팅과 전략 자문 등을 하고 있다.
명품 거래 플랫폼으로 유명한 발란은 최근 김은혜 전 샤넬 이사를 부대표로 영입했다. 김 부대표는 샤넬코리아에서 패션시계보석사업부 이사로 일하며 10년간 마케팅, 유통망 관리, 면세품 관리 등을 담당했다. 그는 이런 경험을 살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해외 고급 브랜드를 발굴해 소개하고, 유통망 개선 등의 업무를 할 예정이다.
교육기술(에듀테크) 스타트업 매스프레소는 미국 금융기업 씨티그룹에서 10년간 이사로 일하며 신규 상장과 유상증자 업무를 담당한 남연수씨를 최고재무책임자(CFO)로 뽑았다. 남 CFO는 매스프레소에서 투자 유치 및 향후 주식 상장 전략 등을 담당한다.
이 밖에 외국계 컨설팅업체 출신들도 최근 스타트업으로 많이 옮기고 있다. 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는 세계적 경영자문업체 맥킨지앤컴퍼니의 김수호 전 서울사무소 파트너를 고문으로, 명품 쇼핑 플랫폼 트렌비는 민예홍 전 베인앤컴퍼니 상무를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선임했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일어나면서 속도 빠르게 관련 솔루션을 내놓은 스타트업들이 주류로 부상하고 있다”며 “잘 나가는 분야에 인재가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