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큰 걱정거리가 생긴 것 같습니다. 1984년생인 자신과 비슷한 20·30대 청년세대의 기강 해이 때문입니다. 김 위원장은 최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청년세대를 겨냥한 통제 주문을 내놓고 있습니다. 지난 8일 당 세포비서대회 결론에서는 "청년 교양문제를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사활이 걸린 문제, 더는 수수방관할 수 없는 운명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고 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옷차림과 머리 단장, 언행, 인간관계까지 들여다보도록 지시했습니다.
앞서 2월 24일 당 중앙군사위 확대회의에서도 "새 세대 인민군 지휘 성원에 대한 교양사업과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젊은 초급 간부들의 정치 의식을 꾸짖은 겁니다. 20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에 따르면 오는 27일부터 수도 평양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 청년동맹(청년동맹) 제10차 대회가 열립니다. 5년 만에 열리는 이번 행사 역시 김 위원장이 밀레니얼세대(1980년대 초반 이후 출생)에 대한 사상·생활 통제의 고삐를 바짝 죄는 계기가 될 전망입니다.
북한의 2030세대는 '장마당 세대'로 불립니다. 이들은 최악의 기근을 겪은 19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 당시 태어났거나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국가 배급제가 사실상 붕괴한 시기였죠. 이들은 불법 시장인 ‘장마당’에 나가 돈을 벌고 먹을 것을 구해야 하는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주의 배급제보다 시장경제에 익숙한 세대인 셈이죠.
이들은 북한 인구(약 2,500만 명)의 14%인 350여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사상적 충성심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집단으로 평가됩니다. 한마디로 '돈'에 따라 움직이는 거죠. 2010년 탈북한 강미진 NK투자개발 대표는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 충성의 온도 차가 있다"며 "일상적으로 자본주의를 접한 장마당 세대는 국가보다 내가, 우리집이 먼저 잘 먹고 잘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설명합니다.
남성 세대주(남편)가 장마당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아내에게 기대는 모습을 보고 자라 남존여비 등 가부장적 인식도 덜하다고 합니다. 휴대폰(스마트폰)을 활발하게 사용하고, 어렸을 때부터 남한의 대중문화(드라마·영화·음악 등)를 접한 세대입니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2월 여의도연구원 온라인 간담회에서 "북한 청년의 70~80%는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볼 것"이라며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낼 때 'ㅋㅋㅋ'라고 쓰는 등 언어도 한국말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고 소개했습니다.
'스위스 유학파'인 김 위원장도 집권 초기엔 개혁·개방을 지향하는 듯 보였습니다. 평양 시내가 '평해튼'으로 불릴 정도로 여느 자본주의 도시와 비슷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고요. 스시 바와 이탈리안 레스토랑, 놀이공원이 등장했고 기본요금이 1달러인 택시도 운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인 리설주 여사의 등장도 이 같은 변화를 기대케 한 요인 중 하나였죠. 선대에선 최고지도자의 아내가 세련된 차림으로 현지 시찰에 동행하거나 남편과 다정하게 팔짱 끼고 걷는 모습을 상상도 할 수 없었거든요.
그러나 대북 제재의 장기화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자연 재해의 '3중고'는 김정은 정권의 폐쇄성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급속히 경직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 통제하기 어려운 장마당 세대가 새로운 '체제 위협' 요소로 떠오른 겁니다. 기성세대에 비해 충성심이 약하고 외부 문화를 동경하는 이들에게서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국가 존립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겁니다.
김 위원장이 경제난에 따른 주민 동요를 막기 위해 엘리트 중심의 '공포 정치' 범위를 청년을 포함한 대중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박영자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은 최근 '내핍과 정풍 선언한 북한의 제6차 당세포비서 대회'라는 보고서에서 "김정은 정권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제2의 고난의 행군'이 아닌 돈과 자유의 맛을 알아버린 북한 주민과 기관들의 이반"이라고 지적한 배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