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자 이여자’를 내버려 두라

입력
2021.04.21 00:00
26면
4·7 보궐선거 20대 청년 투표 성향 논란
백래시와 원망의 정치를 부추기는 정치권
더 늦기 전에 공격과 선동 중단해야



사회현상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지켜보는 일을 업(業)으로 삼는 연구자로서 가끔 겪는 일 중 하나가 ‘불길한 예감’이다. 뭔가 바람직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나고 이런저런 이해관계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상황을 미리 짐작하는 것이다. 별로 반갑지는 않지만 버리기도 어려운 감각이다.

지난 4월 7일 저녁 보궐선거 개표를 지켜보던 중 한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눈에 띄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20대 남녀의 투표결과가 확연히 달랐다. 남성의 72.5%가 국민의힘, 22%가 민주당에 투표한 데 비해, 여성의 44%가 민주당, 40.9%가 국민의힘, 15.1%가 그 외의 정당에 투표했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막대그래프가 숫자보다 더 선명하게 차이를 드러냈다. 논란이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다음날 열린 여성신문 토론회에서 이를 언급했다. 그 후 일주일간 여러 언론사 기자들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까지도 계속되는 ‘이남자 이여자의 투표성향’ 논란의 핵심에는 정치가 있다. 1999년 군복무가산점제도가 위헌 판정을 받아 사라진 후 불만을 가진 남성들이 성평등을 주장하는 여성들과 인터넷상에서 대립적인 전선을 구축했다. 이후 20여 년이 흐르는 사이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의 몇몇 인사들은 잊을 만하면 이 문제를 다시 꺼냈다.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근거도 효과도 없는 주장들이 오르내렸다.

20대 청년 남성들이 뭔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 억울하다는 감정,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주장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계속되었다. 이것은 명백한 백래시, 민주주의가 성장할 때 나타나는 반발이지만, ‘르상티망(ressentiment)’, 원망의 정치에 가깝다. 자신이 불공정하게 대우받고 있다는 감각에서 형성되는 감정으로 단순한 화(anger)와는 다른, 정치적 감정이다. 사회 정의가 훼손돼 자신이 받아야 할 인정과 지위를 얻지 못했다는 상실감과 무력감이 뿌리다. 이런 정동(情動)이 심화되면 분노를 투사할 희생양을 만들거나, 자기애적(narcissist) 상처로 빠져들거나, 피해자로서 자신에 대한 트라우마를 키울 수 있다. 이런 정서는 ‘내로남불’이라고 불리는 민주당의 실정 때마다 강화되었고 야당 정치인들은 이를 정치 공간으로 불러냈다.

문제는 사후해석, 이를 해석하는 방식이다. 야당은 청년들이 자기편이 되었다고 환호하고 여당은 청년들을 잃었다고 탄식한다. 그런데 놀라운 현상이 발견된다. 야당이나 여당 모두 선거 결과의 탓을 여성주의운동과 20대 여성에게 돌린다는 점이다. 여당은 ‘여성주의운동에 올인’한 탓에 20대 남성이 등을 돌렸다고, 야당은 그런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승리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틀렸다. 여당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잃어왔고 한때 70%에 이르던 청년 여성의 지지율은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졌다. 야당은 이번 선거가 민주당에 대한 정권심판의 의미이지 그들의 선전 덕분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따라서 젠더 관점에서 이번 선거는 ‘여성과 남성 모두 실망한 선거’다. 여당의 해석은 진실을 외면하는 비겁함을, 야당의 해석은 정치적 올바름을 외면하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젠더 관점에서 이번 선거가 정치인들에게 주는 숙제를 생각해보면, 더 늦기 전에 그동안 부추겨왔던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20대 청년들은 학교를 나서면 함께 일하고 친구가 되고 가족을 꾸릴 사람들이다. 청년들이 분노와 원망에서 벗어나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권력을 좇는 이들의 공격과 선동을 중단해야 한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ㆍ전 한국여성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