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로 인해 지하철 운행이 지체되면서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시민들은 갑론을박했다. "타인에게 불편을 끼쳐서는 안 된다"고 불만을 터트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취지를 이해한다"며 이들의 교통 접근권을 보장하는 데 속도를 높이지 않는 지방자치단체와 서울교통공사를 탓한 이들도 있었다.
시위를 이끈 장애인 인권운동가 권달주·박경석·이형숙·최용기 등은 지난달 도로교통법 위반 등으로 인한 벌금 납부를 거부하고 스스로 서울구치소로 들어갔다가,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벌금을 대신 내겠다며 모금에 나서며 나흘 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법적 처벌과 시민들의 비판에도 이들의 '이동권 보장 시위'는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제41회 장애인의 날인 20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변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정책국장은 "나는 아직 전과 0범이지만, 곧 전과자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동권 시위가 법을 어겨 가며 진행되는 것은 일종의 시민 불복종 운동이라고 했다. "존재하지 않는 제도를 만들려면 법을 이탈하는 행동을 해야 변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법을 어기지 않고도 변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장애인 시민들의 비판에 대해서도 오히려 그는 "감사하다"고 했다.
비장애인들의 불만이 장애인이 원하는 이동권 확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민 여러분이 참아주신 덕에 서울 지하철 역의 92%에 승강기가 설치됐고 저상버스 보급률은 55%에 이르렀다"며 "장애인끼리 정치인을 찾아가 호소하면 바뀌지 않는데 비장애인들이 불편을 호소하며 처리하라고 하면 들어준다"고 했다.
변 국장은 "이건 정말 딜레마고, 장애인으로서 죄송하지만, 시민 여러분이 불편함을 감수해 주신 덕에 한국 사회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전장연에 따르면 2015년 서울시는 2022년까지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는 '서울시장애인이동권선언'을 내걸었지만, 올해 진행될 예정이던 승강기 공사가 서울시 본 예산에서 빠지면서 이 약속의 실현 가능성 자체가 낮아졌다. 이 때문에 전장연 등 장애인 활동가들은 이동권 시위를 벌이고 있다.
변재원 국장은 생후 10개월 때 의료사고로 인해 척수에 구멍이 생겼고, 바이러스가 감염돼 하반신 신경마비인 채로 살아왔다.
교육 과정에서 불편을 겪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대 행정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행정을 알고 나서 제도를 바꾸겠다'는 뜻이었다. 석사 논문 주제도 장애인 접근성 개선을 위한 정책 과제를 택했다.
그는 당초 석사를 마치고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대신 본격 운동가로 나서게 된 것은 "(지난해) 청도대남병원에서 발생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집단 발병을 보고, 가장 먼저 집단 감염되고 죽는 것이 차별받고 소외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스스로를 가리켜 '못된 장애인'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늘 착한 장애인, 다른 사람에게 무해한, 부탁하지 않는 장애인으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못된 장애인이 된다는 것은 힘들고, 많은 분들이 싫어하시기도 한다"며 "정당한 권리를 누려본 적이 없는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내고 차별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내가 욕 먹어도 괜찮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변 국장은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탈시설장애인당'을 만들어 장애인들의 정치 참여를 늘리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앞으로 계획에 대해 "탈시설 지원법과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열심히 투쟁할 것"이라며 "서울시가 이동권 보장 약속을 지키고, 정치권의 장애인 정책이 실현돼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