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주거대책 또 ‘빚 내서 집 사라’인가?

입력
2021.04.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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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겨냥 뒤죽박죽 선심책 남발 조짐
가계부채 경고 불구 청년대출 확대까지
무분별 포퓰리즘에 시스템 위기만 증폭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특단의 청년대책’을 주문한 건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는커녕 되레 우려와 불안감을 키웠다. 대통령은 ‘4·7 재보선’에서 확인된 청년세대의 들끓는 분노와 민심을 무겁게 의식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식이 청년 일자리 확충과 내 집 마련 기회를 넓혀 줄 특단의 대책 지시로 이어진 셈이다. 문제는 그날 드러낸 인식과 문제 해결방식이 지금까지와 변한 게 전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우선 우려되는 건 대통령과 청와대의 자기기만적 현실인식이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문 대통령은 그날 “청년들이 코로나 충격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다”며 청년들의 좌절과 분노를 은근슬쩍 코로나19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그런 언급은 그동안 경제상황에 대한 청와대의 숱한 왜곡된 해석에 국민들이 느껴왔던 기만당하는 듯한 불쾌감을 다시 한 번 자극했을 뿐이다.

서울시장 보선에서 20대 청년 남성 70%가 야당 후보에 몰표를 던진 원인은 코로나19 탓만이 결코 아니다. 현 정권이 미숙한 고용ㆍ노동정책으로 되레 청년 일자리를 크게 위축시킨 점, 조국 사태 등으로 공정 구호가 위선이었음이 드러난 점 등이 크게 작용했다. 또 하나 중요한 원인을 꼽는다면 단연 집값 폭등으로, 졸지에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 대다수 청년들의 좌절과 분노가 작용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청년 문제를 언급하려고 했다면, 적어도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는 성의를 보였어야 했다.

왜곡된 현실인식보다 더 불안한 건 문제 해결방식이다. 일자리 얘긴 그렇다 쳐도, “청년과 신혼부부 무주택자에게 내 집 마련의 기회가 보다 넓어질 수 있도록 기존 대책을 뛰어넘는 특단의 대책”을 주문한 대목이 문제다. 2018년 4월 “월성1호기는 언제 멈추느냐”는 문 대통령의 한 마디처럼, 대통령의 정책 암시는 심각한 정책 무리수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이번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국내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1,998조 원으로 2010년 968조 원에서 10년 만에 2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부채증가 속도가 2015년 이래 5년 연속 OECD 회원국 중 1위를 달릴 정도로 빨랐던 결과다. IMF 등 국내외 기관과 전문가들의 경고가 이어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지난해 8%대까지 치솟은 가계부채 증가율을 코로나19 이전 수준인 연간 4%대로 낮추기 위한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마련하는 중이다.

하지만 여당 내에선 벌써부터 차기 대선을 의식한 ‘묻지마 청년대책’이 남발되고 있다. “청년들이 결혼 축의금만으로도 집을 살 수 있도록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등을 90%까지 확 풀자”는 송영길 의원뿐만 아니라, 차기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까지 나서 청년 등에 대한 LTV나 DTI(총부채상환비율)의 획기적 완화를 거론하고 나섰을 정도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나온 문 대통령의 특단 대책 주문이 가계부채 관리방안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불문가지인 상황이 됐다.

하지만 대통령이 주문한 특단 대책 수준의 청년 대출 완화책은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가계부채 관리방안과의 엇박자는 물론, 편의적 시책에 따른 금융시스템 훼손이 심각할 것이다. 정권 초 임대사업자 등록제가 다주택 투기를 부추겼듯, 결국 ‘빚 내서 집 사라’는 정책의 반복으로 상승한 집값을 뒷받침하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 또 내 집 마련이 더 절실한 4050 무주택 세대주에겐 심각한 역차별이 발생한다.

선거에서 표를 얻는 데만 신경 쓰는 포퓰리즘과 좋은 정책으로 민심을 얻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정권이 지금이라도 ‘꼼수’를 넘어 민심을 진지하게 받드는 정상궤도로 복귀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장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