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김학의 별장 성접대 동영상’이 알려지며 이목이 집중됐던 ‘윤중천·김학의 수사'의 끝은 초라했다. 2013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친 검찰 수사 결과만 보면, 건설 브로커 윤중천씨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뇌물죄는 물론이고 성폭력 혐의로도 기소되지 않았다.
2019년 검찰의 재수사 끝에 두 사람은 다시 재판에 넘겨졌지만, 법원이 김 전 차관의 유죄를 인정한 부분은 성접대나 성폭력 혐의와는 무관한 사업가 최모씨에게 받은 휴대폰 요금 등 ‘4,300만원 뇌물'이 전부였다. 윤중천씨도 공소시효 문제와 여성 진술 신빙성 등을 이유로 강간치상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 받았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1,249쪽 분량의 대검 검찰과거사 진상조사단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단은 이 같은 ‘용두사미’ 결과에 경찰과 검찰, 두 수사기관 모두 책임이 있다고 봤다. 경찰의 부실 수사와 검찰의 소극적 수사가 결합해, 윤씨와 김 전 차관이 제때 적정한 죄목으로 사법적 판단을 받을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김 전 차관 뇌물 수사의 경우, 검찰과 경찰 모두 성접대 실체는 확인했으나 ‘대가성 입증’을 위한 강제수사로 나아가지 못한 점이 문제로 꼽혔다. 성폭력 수사의 경우 경찰은 여성들 진술을 철저한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고, 검찰은 여성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 없이 진술 검증에만 치중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검찰과 경찰, 두 기관의 상호 불신 탓에 시작부터 삐걱거린 수사였던 데다, 정권 초 부실 인사검증 논란이 덧대지면서 태생부터 정치적 사건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진상조사단은 김학의 사건에 대한 2013년 검찰의 1차 수사에 대해 뇌물수수 등 ‘전면적 부패 수사’로 수사하려는 시도가 없었고, 성범죄의 진상을 확인하기보다는 여성들 진술 신빙성을 탄핵하는데 그친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김학의 전 차관 성접대 의혹 제기 당시 수사성패를 가를 핵심 쟁점은 대가성 여부 확인에 달려 있었다. 김 전 차관이 윤중천씨를 통해 성접대를 받고, 윤씨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한 정황이 확인돼야 뇌물 혐의를 적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상조사단은 검찰 1차 수사팀이 성접대의 대가성을 따져보고, 윤씨의 추가 금품제공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강제수사에 나서지 않은 건 문제라고 봤다. 검찰은 김 전 차관 관련 계좌를 추적하지 않았고, 휴대폰과 주거지 압수수색도 하지 않았다. 윤씨에게 뇌물 관련 진술을 받아내려고 설득과 압박을 이어갔지만, 결국 영장을 청구할 만큼의 단서는 확보하지 못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검찰 수사팀 관계자는 "경찰도 뇌물수사를 하려다가 안 되니까 성범죄로만 사건을 넘겼는데, 검찰까지 근거 없이 뇌물 수사를 하면 '몰아가기 수사'가 될 판이었다"고 설명했다.
진상조사단은 그러나 “검찰이 경찰 송치 죄목에 국한해 수사하는 바람에 관련자 처벌이 6년간 지체됐다”고 지적했다. 성폭력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면 성접대 혐의를 적용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섰어야 했다는 것이다. 성폭력 수사경험이 풍부한 지방검찰청의 한 간부는 “2013년엔 성접대를 뇌물로 보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면서도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사건인 만큼, 기각될 가능성이 있더라도 영장을 청구했다면 지금까지 파장이 이어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들을 조사할 때 나타난 검찰의 태도도 문제로 꼽혔다. 진상조사단은 검찰 수사팀에 대해 "여성들이 처한 특수 상황에 대한 고려는 도외시한 채, ‘피해자답지 못하다’는 사정을 부각하는 데만 진력했다”고 평가했다. 여성들을 배려하는 세심한 조사로 사실관계를 가리려고 하기보다는 여성들의 진술 신빙성을 배척하는 데 치중된 수사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여성들 조사 과정에서 속기사를 제외하고는 여성 검사와 수사관 참여가 없었고, 심리적 불안 상태의 여성이 신뢰관계인 동석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기도 했다. 검찰의 1차 수사결과에 납득하지 못한 여성 L씨의 고소로 2014년 2차 수사가 진행됐지만, 김학의 전 차관 소환조사도 없이 수사는 종결됐다.
여성들의 피해 진술이 명확하지 않고 일부 석연찮은 지점들이 있었지만, 검찰의 무신경으로 피해로 인정 받을 수 있었던 부분까지 외면 받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검찰과 경찰 사건 기록을 모두 살펴봤던 한 변호사는 “성폭력을 당했다는 시점 이후에도 여성들이 윤중천씨와 관계를 이어간 점을 두고 검찰은 ‘피해자답지 않다’고 해석했지만, 심리적 억압 상태인 여성들의 경우 선택지가 굉장히 제한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성폭력 수사의 특성상 여성들의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증거였기에 검찰 입장에선 엄격한 검증이 필요했고, 2013년엔 '성인지 감수성'이란 개념이 생소했던 시기라 현재 관점에서 검찰 수사를 과도하게 재단하는 건 무리라는 반론도 있다.
진상조사단은 경찰에서 송치된 사건을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는 특수부나 성폭력 범죄를 전담하는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여조부)가 아닌 강력부에 배당된 것도 문제로 봤다. 사건이 강력부에 배당된 공식적인 이유는 윤중천씨의 필로폰 구매 의혹 등 일부 마약 사건이 경찰 송치 범죄 내용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배당 과정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는 “경찰 수사를 지휘했던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에 사건을 배당하면 권력형 비리라는 신호로 읽힐 판이었다"며 "박근혜 정권 초기라 정권 눈치를 안 볼 수도 없었던 터라, 가능하면 사건을 키우지 않으려고 강력부에 배당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상조사단도 "강력부 배당이 위법은 아니더라도 이후 수사과정에 있어 성범죄 피해자 조사 방식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제공했다"고 판단했다.
2013년 경찰 수사지휘 과정에서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가 관련자들 체포영장(2회)과 압수수색 영장(2회) 등 총 10회에 걸쳐 “보강수사가 필요하다”며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기각한 점도 논란이 됐다. 진상조사단은 검찰 지휘에 대체로 큰 문제는 없었다고 보면서도 "김학의 전 차관을 상대로 한 강제수사를 적극 지휘하지 않거나, 윤중천씨 구속영장을 기각한 건 문제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김학의 전 차관의 성범죄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더라도, ‘별장 동영상’ 속 인물이 김 전 차관임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2013년 '윤중천·김학의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과 경찰 수사팀은 지금도 “우린 원칙대로 수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대 기관에 대한 불신과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경찰 수사팀 관계자는 “수사 시작할 때부터 검찰이 김학의를 기소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고, 기소 의견 송치가 목표였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팀 관계자는 “검찰 수사과정에서 김학의를 처벌할 수 있는 범행을 못 찾았다고 비판하면 이해하겠지만, 일부러 봐 준 적은 없다"고 밝혔다.
진상조사단 결과보고서를 보면 검찰과 경찰은 수사 정당성 강조와 명분 세우기,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과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진상규명 노력이 미흡했고 수사과정에 일부 문제가 있었고 여성들 조사에 배려가 부족했다는 점에 대해선 제대로 반성하지 않았다. 진상조사단에 참여했던 법조계 인사는 "문제 없었다는 주장만 하지 말고 반성할 점은 인정해야 한다. 국민 눈높이에서 판단해야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글 싣는 순서> 윤중천ㆍ김학의 백서
<1> 면담보고서의 이면
<2> 진상조사단의 실체
<3> 반칙 : 윤중천이 사는 법
<4> 이전투구 : 김학의 동영상
<5> 법과 현실 : 성접대와 성착취
<6> 동상이몽 : 검찰과 경찰
<7> 반성 : 성찰 없던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