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지역 보건소에서 시행하던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여부를 알아내기 위한 무료 혈액검사가 중단되면서 HIV 감염 관리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동안 보건소는 무료로 HIV 감염 여부를 알 수 있는 혈액검사와 감염자 상담 등을 시행해 오다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중단됐다. 검사자 수가 줄면서 지난해 HIV 신규 감염자도 전년보다 22% 정도 감소했다. 하지만 신규 감염자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9년 HIV/AIDS 신고 현황에 따르면 2019년 신규 HIV 감염자 1,222명 가운데 30.0%(367명)은 보건소에서 HIV 진단을 위한 혈액검사를 받았다. 보건소에서는 익명으로 HIV 진단을 위한 무료 혈액검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HIV 국내 진단율은 편견과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60%에 불과했는데, 보건소의 HIV 진단을 위한 무료 혈액검사가 중단되면서 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다른 아시아 국가인 일본(80%)ㆍ대만(88%) 등은 우리보다 훨씬 검진율이 높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1월 제5차 국민건강증진 종합계획 사업 목표로 ‘감염병에 대한 예방 및 관리 강화’를 제시하고 질병관리청 과제로 에이즈(AIDS) 검진, 치료 강화 및 전국민 인식을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실은 딴판인 셈이다.
게다가 다른 나라에서는 감염자가 계속 줄고 있는 것에 반해 우리나라 감염자는 계속 늘고 있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에 따르면 전 세계 HIV 감염자는 120만~220만 명(2019년 기준)으로 2010년 이후 신규 감염자가 23% 줄어들었다. 반면 국내는 2019년에만 1,222명이 새로 감염돼 10년 전과 비교해 43% 늘어났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한국ㆍ칠레만이 HIV 신규 감염자가 늘었다.
HIV는 혈액검사로만 진단하는데 조기 진단하지 않으면 감염자가 급증할 수 있기에 조기 검사ㆍ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기 치료하면 면역 기능 저하와 직접 관련된 합병증뿐만 아니라 직접 관련이 없는 합병증도 줄일 수 있다. 또한 항바이러스제를 꾸준히 복용해 바이러스를 잘 억제하면 HIV를 다른 사람에게 전파할 위험도 거의 없다.
국내에서도 HIV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예방을 위해 먹는 약으로 개발된 노출 전 예방 요법(PrEP 요법)이 쓰이고 있다. 이 약을 매일 복용하며 성관계 시 콘돔 사용을 병행하고, 정기적으로 상담하면 전파를 막을 수 있다.
박경화 전남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HIV 검사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 접근성을 낮추면 HIV 감염자가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물론, HIV 전파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최근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보건소의 무료 익명 검사가 중단되면서 검진이 저조해져 숨어 있는 감염자와 정기검진이 필요한 고위험군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보건소에서 시행하는 익명 혈액검사 외에도 자기 진단 키트로 HIV 검진이 가능하다. 병원을 찾아 익명으로 검사하거나, 약국ㆍ쇼핑몰 등에서 자가 진단 키트를 구매해 검사할 수 있다. 병원에서 시행하는 HIV 검사는 회당 3만~5만 원, 자가 진단 키트 구매는 1회 분당 4만 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