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폰지 사기'를 저지른 혐의로 체포된 후 150년형을 받아 복역 중이던 월가의 전직 유명 투자자 버나드(버니) 메이도프가 14일(현지시간) 옥중에서 숨졌다.
판사가 판결을 내리면서 "특별히 사악(Extraordinarily evil)"하다고 한 그의 폰지 사기에 대한 단죄도 죽음과 함께 막을 내렸지만, 폰지 사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뒷 투자자의 자금을 전용해 앞 투자자에게 준다'는 '돌려막기' 수법은 펀드 사기에서 너무나 흔하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그의 사기는 월가의 '합법적'인 사기보다 조금 더 불법적이었을 뿐"이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메이도프는 2008년 12월 11일 사기 혐의로 체포되기 전까지 명망을 누리던,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인 월가에서 이름을 날리던 거물이었다. 이미 3년 동안 나스닥거래소 회장을 지냈고 수많은 금융회사의 이사를 맡았다.
컴퓨터를 이용한 금융 거래를 초창기부터 도입한 혁신가이자, 열정적으로 나눔을 행하는 독지가이자 직원에게 후한 경영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눈부신 투자 성과는 2008년 전 세계적 금융 위기와 함께 한순간에 무너졌다.
70억 달러에 이르는 고객의 환매 요구에 대응할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게 되자 그는 두 아들 마크와 앤드류에게 "모든 것이 큰 거짓말이었다(big lie)"고 실토했다. 두 아들이 그를 당국에 고발했고, 3개월 뒤 사기, 돈세탁, 위증 등의 혐의를 인정했다.
손실을 입은 고객 중에는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배우 케빈 베이컨, 키라 세지윅, 존 말코비치, 야구 메이저리그(MLB)의 전설 투수 출신 샌디 쿠팩스 등 유명인이 많았다. MLB의 유명 구단 뉴욕 메츠도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메이도프를 믿은 고객 가운데 일부는 전 재산을 날리기도 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유대계 작가 엘리 위젤은 그의 노후 자산과 재단의 자산 모두를 잃었다. 위젤은 "그를 신처럼 믿었다"고 했다.
비극은 가족에게도 닥쳤다. 부친을 고발한 마크는 부친이 체포된 지 2년이 된 2010년 12월 11일 46세에 목을 매 숨졌다. 앤드류는 2014년 9월 48세의 나이에 암으로 사망했다. 부인 루스 메이도프 역시 사기에 대해서 몰랐다며, 남편이 자신을 배신했다고 했다.
'폰지 사기'의 폰지는 사람 이름이다. 이탈리아 태생인 찰스 폰지는 1919년 국제 우편에 동봉된 답신우편 교환 쿠폰(IRC)을 미국보다 이탈리아에서 싸게 살 수 있는 점에 착안, 미국에서 모은 돈을 이탈리아의 대리인에게 보내면 이를 사서 미국으로 보내 더 높은 가격에 매각하면서 돈을 버는 수법을 제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무려 4만 명의 투자자로부터 1,500만 달러를 모집해 45일 만에 50%의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투자 자금에 상응하는 규모의 IRC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투자자들의 환매 요구가 이어졌고, 결국 폰지 사기의 전모가 드러났다.
애초에 폰지는 사업을 진행할 생각이 없었다. 후속 투자자들을 계속 끌어 모아 먼저 투자한 사람들에게 수익이 났다고 하며 돈을 주는 방식으로 돈을 모으다 벗어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방식으로 펀드를 유지해 나가면서 돈을 버는 것을 폰지 사기라 부른다.
과거의 폰지 사기는 이처럼 매우 단순한 형태였지만, 금융 시장이 고도로 발전한 현재도 비슷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높은 수익률을 보이던 펀드가 폰지 사기의 길로 빠지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멀리 갈 것 없이, 2019년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를 부른 라임자산운용이 이런 사례다.
라임은 미국의 무역금융펀드로부터 폰지 사기를 당해 투자자금을 회수할 수 없게 됐지만 이를 돈을 맡긴 투자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대신 신규 자금을 계속해서 끌어들이기 위해 일정한 수익이 난다고 거짓 고지하면서 다른 수익성이 높은 펀드에서 모집한 자금으로 수익을 돌려막는 방식을 택했다. 폰지 사기에 당한 후 폰지 사기로 막은 셈이다.
메이도프는 재판정에서 "이 범죄로부터 금방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점점 더 수렁에 빠져들었다"면서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안다"고 했다. 하지만 뉴욕 지방법원의 데니 친 판사는 뉴욕매거진과 그가 진행한 인터뷰를 근거로 "그는 반성하지 않았다"며 사면을 허용하지 않았다.
뉴욕매거진 인터뷰에 나온 메이도프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나는 고객들에게 수억 달러를 벌어다 줬다"는 것이다. 이 말 자체는 "틀린 말"은 아니다. 적어도 2008년 그의 폰지 사기가 드러나기 전까지 무사히 수익을 얻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원칙상 수익자들은 피해자들의 손실을 보상할 수 있도록 수익을 돌려줘야 하고 실제로 돌려준 사례도 있지만, 관련 청산 작업은 메이도프가 죽은 지금까지도 완료되지 않았다.
메이도프의 주장 중 하나는 금융시스템 자체가 메이도프가 그 허점을 이용하도록 허용했다는 것이다. 수많은 금융회사들이 메이도프의 말과 겉으로 드러난 높은 수익률만 믿고 투자자금을 중개해 준 반면, 검증에는 소홀했다. 규제 당국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1992년부터 2008년까지, 메이도프의 투자 계획이 성립하지 않아 사기가 의심된다는 신고를 수 차례 무시했다.
대부분은 메이도프의 폰지 사기 전모가 드러나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피해자가 됐다. 적어도 대형 투자은행(IB) JP모건체이스는 메이도프의 투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도 이를 무시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또 뉴욕매거진에서 그를 인터뷰한 스티브 피시먼은 친 판사가 메이도프를 "특별히 사악한" 사람으로 묘사한 것은 그의 폰지 사기가 "너무 이해하기 쉬웠기 때문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에, 월가에서 수익성 높지만 이해하기는 복잡한 파생 상품을 고안해 판매하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란을 일으킨 큰 은행들은 거의 처벌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