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할 때 삼성만큼 성과급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죠?” 1월 SK하이닉스 입사 4년 차 김모 사원이 사장에게 보낸 이메일이다. 결국 최태원 SK 회장이 직접 나서서 달래야 했던 ‘SK하이닉스 성과급’ 논란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후 LG전자 현대차 금호타이어 등 대기업에서 ‘MZ세대’(1980년대에서 90년대 중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에 태어난 Z세대를 아우르는 신조어) 사무직ㆍ연구직 노조 설립이 잇따르고 있다. 상명하복에 거부감이 강하고 개인 성과에 따른 공정성을 중시하는 MZ세대 노조의 출현이 노사 관계나 기업 문화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묻기 위해 김종진(48)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박사)을 만났다.
-올 초 SK하이닉스 성과급 논란을 계기로 MZ세대 노조 설립이 잇따르고 있다.
“SK하이닉스 논란을 계기로 MZ세대 노조 설립 움직임이 시선을 끌고 있지만 전조 현상은 3년 전부터 있었다. 네이버 카카오 넥슨 스마일게이트 등 IT기업 엔지니어나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 젊은 직원들의 노조 설립이 이어지면서, 노조 운동은 제조업체 생산직 위주로 일어난다는 고정관념이 깨졌다. 특히 이들은 전년도 회사 수익에 따른 공정하고, 투명한 배분을 요구했다. 지난해 임금 기준으로 인상 폭을 다투는 기존 노사 임금협상과의 틀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또 IT업체 젊은 직원들은 비교적 젊은 IT 창업자들의 노사 관념이 오히려 대기업보다 낙후된 점에 분노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SK하이닉스 젊은 직원이 당당하게 제 몫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IT업계에서 시작된 변화가 대기업 등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렇다. 그 씨앗은 밀레니얼 세대가 기업에 입사하기 시작한 7년 전에 뿌려졌다. 이들이 신입 사원 시절에 보고 느꼈던 불합리한 직장문화에 대한 불만을 최근 입사하기 시작한 Z세대들과 공감하면서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이들 MZ세대, 즉 20ㆍ30대 직장인들이 이미 기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공기업의 경우는 정년이 보장돼 다소 낮지만, 민간 기업은 3분의 2를 차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MZ세대는 이미 별도 노조를 구성하지 않아도 회사 내 의사결정에서 캐스팅보트를 가질 만큼 성장했다.”
-외국에서는 어떤가.
“서유럽 북유럽 국가에서도 MZ세대의 성장으로 개별화 개인화 성향이 강해지면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고 분배를 더 강하게 요구하는 건 우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서구는 사회규범과 연대의식이 강해 우리 사회에서 더 도드라지게 보이는 것 같다. 최근 같은 주제를 놓고 러시아 청년 집단과 회의를 하면서, 러시아 대졸 2030세대도 연공서열 조직 때문에 자신보다 일을 적게 하는 선배들이 임금을 더 많이 받는 것에 대해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난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지속가능사회분과 간담회에서 ‘MZ세대 공정성’에 대해 발표했다고 들었다. MZ세대 공정성은 무엇인가.
“40ㆍ50대가 얘기했던 ‘공정’은 실제 이를 실천했느냐를 떠나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사는 가치였다. 그런데 MZ세대의 공정은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의한 성취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계층ㆍ학력ㆍ성별 등에 따라 출발점이 다른 사회 구조적 불평등을 외면한다는 점에서 편협하다. 기업의 성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의 이윤은 그 기업 정규직만의 힘으로 성취한 것이 아니다. 같은 직장 내 계약직 그리고 협력업체 등의 기여도 공정하게 배분해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 MZ세대 노조는 이런 점에 관심이 부족한 것 같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의 핵심도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 아닌가.
“조금 다르다. 인천국제공항은 정규직이 1,000명가량이고, 협력업체 직원이 1만 명이다. 이 중 7,000명이 전환되는 과정이었고 그들 가운데 다수는 보안ㆍ경비 등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 가운데 34세 미만은 거의 없다. 즉 구직 중인 젊은이 일자리를 가로채는 정규직 전환이 아니었다. 하지만 구직의 어려움에 절망한 젊은 세대는 이런 것을 살펴보지 않고 분노했다. 전환을 단계적으로 진행했으면 이런 오해로 인한 분노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래도 청년들 주장대로 인천공항공사 일자리를 모두 공채시험을 거쳐 선발한다면 그것이 과연 공정한 것인가. 사회적으로 좀 더 진지한 토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를 놓고 젊은 세대와 토론해 봤는지.
“정책기획위원회 분과 간담회에서도 젊은 세대 토론자와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최근 2년간 대학 강의에서도 이 문제로 토론을 많이 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기 위해 오랫동안 훈련한 한국 선수 일부가 대표팀에서 탈락한 것이 과연 사회 정의냐고 반문할 정도로 개인 노력에 의한 성취를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는 20대가 많다. 이들이 중시하는 가치는 연공서열이 지배적인 우리 조직문화에 직무성과급제 도입을 앞당기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앞에서 지적했듯이 비정규직 문제나 성차별 등 사회 구조적 차별에 대해 둔감한 부분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생각하는 공정을 적용한다면,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에 지방대 50% 채용’ 같은 지역균형발전 정책도 불공정한 발상이다.”
-MZ세대의 능력주의 사고는 노조 활동에 적합하지 않은 듯하다. 노조의 목적은 연대를 통해 약자가 교섭력을 높이는 것인데, 능력 있는 사람이 더 큰 성과를 받으려면 노조 활동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반은 사실이고 반은 사실이 아니다. 기존 대기업 노조도 경제적 이해가 중요하기 때문에 성과의 분배에서 협력업체나 비정규직을 배제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장차 MZ세대가 이런 대기업 노조에서 다수가 된다면 앞으로 노동운동은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
-MZ세대 독자 노조는 기업 입장에서도 내심 반길 것 같은데.
“그렇다. 피고용자 간에 이질성이 생기는 것은 교섭에서 고용자 입지를 강화한다. 만일 대기업이 MZ세대 노조의 요구대로 성과급을 주면서 그 대가로 일정 비율의 저성과자 퇴출제 도입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능력주의를 중시하는 MZ세대가 오히려 환영할 만한 제도 아닌가.”
-저성과자 퇴출은 법이 금지하고 있지 않나.
“현재 법은 분명히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저성과자란 표현을 쓰지 않는 대신 권고사직 제도라는 우회로가 있다. 권고사직에는 조직 내 업무 부적응 등 광범위한 사유가 담겨 있어 현실적으로 저성과자 퇴출은 언제든 실행할 수 있다. MZ세대 노조 조직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결국 스스로 발목 잡히는 결과가 될 수 있다.”
-MZ세대 노조라 하더라도 소속 기업의 규모나 업종별로 차이가 있을 텐데.
“업종별 임금 현황을 살펴보면 제조업과 정보통신업에서 MZ세대 노조 결성이 활발한 이유가 드러난다. 최신 자료인 2019년을 기준으로 볼 때 대졸이 다수인 기능직의 월평균 총액 임금은 243만 원으로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는 장치기계ㆍ조작조립직의 258만 원보다 오히려 낮다. 정보통신 업종의 경우도 사무직이 241만 원으로 장치기계ㆍ조작조립직의 267만 원보다 낮았다. 이는 학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사무ㆍ기능직이 기존 노조의 보호망 밖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들 사무ㆍ기능직이 MZ세대 노조의 주축을 구성하나.
“제조업, IT 업종에서 상대적으로 보상이 낮고 조직 내 목소리도 약한 집단이다. 그런데 이들 중 다수가 능력주의 가치를 중시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사회 가치 관련 인식조사 결과 20대에서 능력주의 성향이 급속히 강화하고 있는 것이 드러난다. ‘노력에 따른 소득 격차를 인정한다’에 동의 비율이 20대 초반 남성의 경우 2016년 65.7%에 2019년 79.3%로 늘어났고, 여성은 56.2%에서 74.2%로 늘었다.”
-연공서열 질서가 지배적인 기업문화에 불만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직군별 청년 노조 가입 현황을 보면 제조업과 정보통신, 전문과학기술 업종의 기능직에서 노조에 자발적으로 가입하지 않은 비율이 각각 10.5%, 18.2%, 22.2%로 높다. 이들 업종의 MZ세대가 향후 별도 노조를 만들거나,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확률이 높다.”
-MZ세대 직장인은 선배들을 ‘갓술’이라고 부른다는데.
“기술직 고령 그룹을 낮춰 부르는 은어로, 일은 많이 하지 않으면서 연봉은 많이 받는 상급자를 의미한다. 이런 표현이 언론에까지 등장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인천공항’이 아니라 굳이 ‘인국공’으로 줄여 색깔론을 입히려는 의도와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갈등을 증폭시킨다. 젊은층의 눈에는 자기보다 일을 많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이 오랜 경험으로 쌓은 암묵지는 대응 매뉴얼조차 없는 위기 순간에 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더라도 연차에 따라 지나치게 임금 격차가 큰 우리 사회 임금체계는 조속히 개선돼야 한다.”
-기존 노조가 반대하는데, 직무성과급제로 전환이 가능할까.
“유럽은 노동조합 주도로 수십 년 동안 싸우면서 이미 1940년대에 직무급제로 전환했다. 독일은 노사 단체협상을 통해 직무수행요건이나 직무난이도에 따라 임금 그룹을 12그룹까지 나눈다. 같은 간호사들도 응급실 간호사 임금이 병동보다 높다. 임금 그룹이 올라가려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대신 같은 직무 그룹이라면 다른 직장이라도 임금이 비슷하다. 베를린에서 청소하는 사람과 뮌헨에서 청소하는 사람의 기본급이 같다. 우리도 그렇게 변해야 한다. 지금 정부도 직무급제 도입을 국정과제로 삼고 있지만, 노조 반대로 공공기관에서만 천천히 도입 중이다. MZ세대의 성장 속도를 고려하면 10년 이내에 민간 기업으로 확산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모두 처음 MZ세대 노조 결성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입장이었는데, 지금은 방향을 못 잡고 있는 것 같다.
“초기에는 노조 활동에 부정적인 세대와 직종이 노조를 결성하는 것을 반겼다. 하지만 새로 결성된 노조가 기존 노조를 약화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 적극적으로 포용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입장이다. 게다가 MZ세대 노조는 성향상 양대 노총에 가입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그렇다고 기존 노조가 이들 젊은 세대를 포용하지 못한다면 지속하기 힘들 것이다. 딜레마다.”
-MZ세대 노조가 기존 노조와 다른 것은 이들의 직장에 대한 생각이 이전 세대와 차이가 큰 것도 원인으로 보인다. 이전 세대는 회사의 정체성과 자신의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했고, 이런 성향이 노조 활동에도 나타났다. 하지만 MZ세대에게 직장은 자신이 속한 여러 집단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이유에서 정치투쟁에 매달리는 산별 노조나 양대 노총 활동에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MZ세대의 생각이 더 바람직한 것 아닌가. 기존 세대는 회사나 노조와 자신을 지나치게 동일시한 결과 회사나 노조 활동에 비판 없이 순응해왔다. 특히 노조가 없는 직장에 근무하는 경우 일방적 복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얽매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MZ세대는 ‘왜 회사에 복종해야 하는가, 열심히 일한 만큼 보상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가 회사에 불만을 느낄 때 선택하는 해결책은 순응과 노조 결성ㆍ가입보다 퇴사나 이직을 더 적극적으로 고려한다. 기존 세대가 노조를 생명보험으로 생각했다면, 젊은 세대는 실손보험 정도로 생각한다. MZ세대 노조가 얼마나 지속성을 가질지 궁금하다.”
-MZ세대 등장으로 향후 노동시장은 어떻게 변화할까.
“성과연봉제가 더 늘어날 거고, 특히 팀이나 조직이 아니라 개인별 인사평가가 더 강화될 확률이 높다. 지금 MZ세대가 요구하는 건 개인별 성과에 대한 보상이라, 이는 조직 전반에 성과주의 경영 전략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며, 사회 전체는 노동시장이 파편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고용형태의 변화로 이어져 정규직ㆍ비정규직의 구별도 사라질 것이다. 비정규직이 정규직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이 비정규직화하는 것이다.”
-MZ세대는 다른 세대들보다 양극화가 극심한 세대다.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활약하며 억대 연봉을 받는 전문직도 등장하지만, 장기 실업자나 취업 포기자도 많다.
“최근 10년간 우리 사회 청년 노동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니트(Not currently engaged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증가다. 니트는 정규 교육을 마친 후에 상급 학교 진학이나 직업 교육도 받지 않아 노동시장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니트는 통계상 실업자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는 ‘취업 준비’ ‘자기 모색’ ‘그냥 쉼’ 등이 그 대표적 범주다. 우리나라의 대졸 이상 니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생산가능인구는 빠르게 줄어드는데, 청년 니트도 세계 최고 수준인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학업을 마친 지 4개월 이내 청년에게 정부가 나서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직업훈련 기회를 제공하는 ‘청년보장제도’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유럽연합(EU)은 2014년 이 제도를 도입해 청년 실업자 비율을 상당히 낮췄다.”
성공회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마친 후,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비정규직 문제 등 청년 노동시장 문제를 연구하며, 서울시, 고용노동부 등 정부 단체에 자문 활동 등 정책 수립에도 활발히 참여해 왔다. 현재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실무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